목회메일
신명기(9)-신명기 12: 1~8
2014-11-26 15:16:15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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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9)
신명기 12: 1~8
신명기는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설교입니다. 계속해서 설교 말씀이 이어지는데 12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지켜야 할 법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또 다시 우상에 대해서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2-3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신명기에서 수도 없이 되풀이하십니다. 항상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되풀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종인 목사들이 같은 말씀을 할 때에는 나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인간은 모두 다 우상 만들기를 좋아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인간은 누구든지 우상 섬기기를 좋아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 간에 인간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만약 섬기고 만들 우상이 없게 되면 어떻게 하든 하나 만들기라도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도 만들어 섬기려고 하는 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우상을 섬기던 우리 선조들 또 다른 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것에 대해서 조심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 틈에 우상을 만들고 섬길 가능성이 상당히 많습니다. 첫 번째 말씀하시는 것이 누구든지 조심해야한다, 그 사람들은 아주 특별하기 때문에 그렇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존래란 다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는 우상 섬기는 것은 그만큼 무서운 죄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섬기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죄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상 만들고 우상 섬기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상에 관해서 여러분들이 하실 일은 우상이 될 만한 일은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그리고 동양이나 서양이나 어디든지 공통된 우상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상으로 하는 것 하나는 돈입니다. 그 다음이 자식이고 최근에 와서는 건강입니다. 이 세 개는 앞으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또 젊은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우상이 있는데 젊은이들은 좀 다양합니다. 연예인들이나 스포츠맨을 우상으로 섬기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요즘 또 우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더 하지만 연세 드신 분들도 섬기는 우상이 하나 있는데 휴대폰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처럼 섬깁니다. 편리하긴 하지만 쓸데만 쓰면 되는데 밤낮으로 그것을 달고 다닙니다. 횡단보도를 지나면서도 보고 어떤 아이들은 용케 자전거를 타면서도 문자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특별히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섬기는 우상이 있습니다. 명예입니다. 이것을 이겨야합니다. 모든 것을 다 이기고 마지막에 명예라는 우상을 이기지 못하면 사람이 추하게 됩니다. 그런데 명예라는 우상은 은근슬쩍 들어옵니다. 안 섬기는 것처럼 하면서도 끌려가는 것이 명예라는 우상입니다. 조심해야합니다.
우상에 있어서 우리는 귀하게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 지혜가 있어야합니다.
한 퇴역장군이 있었습니다. 전선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 장군이 퇴역하고 난 후 차를 즐깁니다. 이 장군에게는 한 잔 마시고 나면 정성스럽게 닦아 둘 정도로 아주 귀한 찻잔이 있습니다. 이 장군이 어느 날 마신 찻잔을 씻어서 닦다가 찻잔을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 장군이라 역시 달랐습니다. 재빨리 떨어지는 찻잔을 낚아챕니다. 그러면서 큰일 날 뻔 했다고 한숨을 쉽니다. 식은땀이 흐를 뻔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군이 한참 있다 그 찻잔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서 깨버립니다. 그러면서 장군은 ‘전쟁터를 누리던 내가 이 찻잔 하나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다니…’ 하고 스스로 개탄하면서 버려버렸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귀한 것 좋은 것을 대할 때는 바로 이것입니다. 귀하게 여기지만 그러나 그것 때문에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쫓아다닐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이 귀하고 자식이 귀하고 건강이 귀합니다. 다 좋습니다. 취미도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길 줄 아는 믿음도 있어야합니다.
본문 4절과 8절에서 신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4절에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라고 말씀하시고 8절에서는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눈여겨 볼 것은 ‘그처럼 행하지 말고’(4절)라는 말씀과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8절) 라는 말씀입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신자들은 달라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은 달라야한다고 요구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진정한 신자라면 무언가 달라야한다, 세상 사람들과도 달라야하고 다른 사람들과도 달라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서는 욕심을 좀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유수한 교회가 많겠지만 우리 교회는 그 교회들과 좀 다르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분당소망교회 신자들은 다른 신자들과 좀 다른 신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다른 교회 지도자들과 무언가 좀 다른 교회 지도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자신에 대해서 분당소망교회 목사는 무언지 몰라도 좋은 의미에서 다른 목회자들과 좀 다른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변치 않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부터 계속해서 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은 좀 달라야한다,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 한다고 해서 그냥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통해서 하시고 계십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한다고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때마다 생각해 보아야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좋은 일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거부하시는 일이 아니라면 세상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한다고 하더라도 또 거기에 포함되지 않으면 나만 못난 사람이 되고 모자라는 사람이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시는 일은 따라하지 않는 다름이 있어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한편 신자라고 해서, 달라야한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자들은 내 자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그것을 내 것이라고, 내 인생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돈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서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들은 무엇이든 내 생각대로 내 맘대로 또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신자입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하고, 내가 하기 싫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 간에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찾아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하고 성경말씀을 공부해야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하나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오늘 본문에서는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나아가서’ (5절) 라고 장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배는 귀합니다. 여러분들이 예배드리는 것은 참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한 예배라도 내 마음대로 아무 곳에서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이 있습니다. 너는 여기서 예배드리라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가 있습니다. 거기서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또 예배드릴 때 드리는 예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 정도 드리면 되겠다, 내가 이것을 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드리고 싶은 그것을 마음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물이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님 법을 알아야합니다. 이것을 6절에서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고 가져다가 드리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대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예배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예배드리고 이런 순서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교회를 책임지고 나가고 있는 하나님의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바르다고 고민하고 기도해서 정한 예배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드리는 헌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렇게나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가운데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6절에서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 열매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첫 월급입니다. 언젠가 우리 교인 가운데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여 전문의가 된 후 첫 월급을 받고 첫 월급이니 내복 한 벌 해 입으라고 봉투를 가지고 왔습니다. 금액은 얼마 되지 않지만 첫 열매라고 하나님께 바치는 심정으로 목사에게 바친 것인데 제가 받아서라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드릴 수 있을지 생각한 그 마음이 귀한 것입니다. 참으로 오래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열매를 바치라고 말씀하신 이유에 대해서 두 가지 측면으로 보아야합니다. 하나는 이집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해방을 그렇게 거부하다가 마지막으로 항복하고 해방시킨 까닭이 있습니다. 이집트 장자들의 재앙 때문이었습니다. 이집트 장자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면서 여러분의 모든 첫 번째 것을 가지고 와서 오늘의 내가 있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노예로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므로 오늘 이렇게 자유로운 인생, 풍요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예물을 바치면서 ‘옛날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가?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고 누릴 수 없었는데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일헌금이든지 십일조든지 어떤 헌금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는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순진하게 순종하게 되면 그런 사람에게는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또한 특별하고 각별하게 임합니다. 좀 바보같은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순전한 믿음을 참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있어서 특별히 주의할 것은 무엇보다도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금액은 하나님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돈은 하나님께서 많이 가지고 계십니다. 좋은 것은 전부 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가지고 계시면서 이 많은 것을 누구에게 줄까 오히려 고민하십니다. 좋은 것, 많은 것을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마음으로 드리는 것 입니다. 금액 다과에 불문하고 ‘마음을 드리고 있는가? 그냥 습관대로 아무런 생각없이 드리는가?’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마지막 무렵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는 너희들 보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왜 그렇게 화가 나시면서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는지 그것을 말라기에서는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말1:7)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아무렇게나 바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쳤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나는 그런 것 안 받았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주겠느냐’(말1:8)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도 받지 않을 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와서 바쳤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바쳤다고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바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받은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것 때문에 너희들이 꼴도 보기 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말1:10) 그런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면서 나는 드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말1:13)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면서 번거롭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너무나 속상하십니다. 또 ‘코웃음치며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말1:13).. 헌금 내라고 한다고 코웃음 치고 마음에 하나도 없는 것을 가지고 와서 바쳤다고 하는 것을 속상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것 때문에 마음 없는 사람의 제물은 받기도 싫고 그런 사람을 만나기도 싫다고 하십니다.
다시 확인하십시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있어서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이 시간에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어떤 것을 바치든지, 큰 것을 바치든지 작은 것을 바치든지 간에 마음에 있는가 없는지는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
또 하나님께서는 예배 후에는 하나님 앞에서 즐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이 눈여겨 볼 귀한 말씀입니다. 7절에서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시므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 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드리고 난 후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즐거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예배 후에 가족들이 모여서 그렇게 하라는 것인데 같이 사는 가족이라도 그렇게 하고, 떨어져 사는 가족이라면 더욱 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입니다. 주일만큼은 같이 모여서 음식을 나누어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자녀 된 여러분은 잘 아셔야합니다. 하나님 명령입니다.
성경에서 이것을 여러 번 말씀하십니다. 10절과 11절에서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라고 말씀하시고 17절과 18절에서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은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도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택하신 곳이란 가나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즐거워할 때 우리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어야할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노비이고 또 하나는 레위인입니다. 이것을 19절에서 ‘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우리가 즐거워할 때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기쁜 일이 있을 때 우리만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항상 함께 즐거움을 나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기뻐하고 싶어도 기뻐할 것이 없는 사람들, 즐거워할 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번 성탄 감사 음악예배 때 특별히 독거노인들을 모셨습니다. 맨 앞줄에 모셨는데 티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앞으로 불러내지 않았습니다. 조용하게 맡아서 각 사람이 가서 그 분들을 따로 모시고 와서 함께 즐기고 선물을 드렸는데 참 잘한 것 같습니다. 조금 하고 난 후 크게 광고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금년에 여러분들이 내신 연탄 헌금으로 청주에 가서 일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모자라는 사람보다 나누는 손길이 더 많은 것 같아 멀리 청주까지 가서 그 일을 했습니다. 거기 가서 아주 힘든 사람들에게 연탄을 나누었고 기름보일러에 기름을 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름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아마 여러분의 귀한 헌금으로 그분들은 한겨울을 편안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사랑의 쌀독을 시행하려고합니다. 예배드리러 오실 때 쌀독에 쌀을 넣어두면 퍼가는 사람들이 편하게 퍼가기 위해서 다른 쪽에 두어 퍼갈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1월 달에는 설 되기 전에 라오스에 갈 예정입니다. 나환자들로부터 아주 긴급한 요청들이 많았는데 마침 설날도 되기 때문에 설 되기 전에 가서 나환자들에게 좋은 것을 나누는 일들도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따뜻한 겨울을 지내고 나름대로 풍요롭게 지낼 때 늘 없는 사람들, 못 먹는 사람들, 그 분들을 생각해야합니다. 기독교인들 항상 혹시라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는지,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는지, 학비가 없어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는지 눈을 돌려야합니다.
신자들은 누구보다도 항상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긍휼하신 하나님이고 긍휼한 우리를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신명기 14장 21절에서 ‘너는 염소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말씀하시면서 이런 것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맛은 이것이 더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얼마나 악한 노릇입니까? 새끼주려고 어미가 젖을 만들었는데 그 젖으로 새끼와 함께 삶아서 먹는 사람들.. 아주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1:13)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 중에 두려움을 가지고 보아야할 말씀이 있습니다. 16절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라는 말씀입니다. 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23절에서는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라고 말씀하시고 27절에서는 ‘네가 번제를 드릴 때에는 그 고기와 피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드릴 것이요 네 제물의 피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위에 붓고 그 고기는 먹을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보아야합니다. 하나는 문자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예 먹지 않으려고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 내 마음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순진하게 말씀하시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피 뿐만이 아닙니다. 신명기 14장 4절부터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에 대해서 쭉 말씀하십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도 우리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고 이제는 신약의 시대이므로 신약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쉽게 생각하지 말고 두려움을 가지고 이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마음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약간 어수룩숙하게 보여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두 번째는 담겨진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생명은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물론이고 동물의 생명도 심지어는 식물의 생명도 같이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조금 더 나간다면 사람에게는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생명같이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생명같이 여긴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까지도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를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간에 이 일에 대해서 우리 하나님은 혹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혹시라도 이렇게 하는 것을 싫어하시지 않을까? 늘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복입니다. 이런 경고를 수없이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쫓아낼 그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절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게 하실 때에 너는 스스로 삼가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29절-31절) 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다 거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13장 1절에서는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에게 우상적인 것을 권유하면 거부하라고 말씀하시고 13장 6절에서는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런 사람들까지도 다 거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혹시 여러분들에게 기적과 이적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또 그 일이 이루어졌어도 거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혹은 강제로 여러분들을 강제하는 일이 있고 위협하는 일이 있을 때, 그런 일에 있어서도 거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는 그런 사람들을 가차없이 죽이라는 말씀까지 하십니다. 이것에 대해서 성경은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신13:5) 라고 말씀하시고 8절에서는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라고 말씀하십니다. 13절에서 18절에서는 ‘너희 가운데서 어떤 불량배가 일어나서 그 성읍 주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확실한 사실로 드러나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차지한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구히 폐허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아니할 것이라 너는 이 진멸할 물건을 조금도 네 손에 대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신 다른 신에 대해서는 이처럼 강력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약 불순종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징계도 그만큼 무섭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순종하게 되면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이것을 25절에서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 라고 말씀하시고 28절에서 ‘네가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3장 17절에서는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를 그치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심 같이 너를 번성하게
신명기 12: 1~8
신명기는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설교입니다. 계속해서 설교 말씀이 이어지는데 12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지켜야 할 법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또 다시 우상에 대해서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2-3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신명기에서 수도 없이 되풀이하십니다. 항상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되풀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종인 목사들이 같은 말씀을 할 때에는 나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인간은 모두 다 우상 만들기를 좋아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인간은 누구든지 우상 섬기기를 좋아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 간에 인간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만약 섬기고 만들 우상이 없게 되면 어떻게 하든 하나 만들기라도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도 만들어 섬기려고 하는 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우상을 섬기던 우리 선조들 또 다른 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것에 대해서 조심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 틈에 우상을 만들고 섬길 가능성이 상당히 많습니다. 첫 번째 말씀하시는 것이 누구든지 조심해야한다, 그 사람들은 아주 특별하기 때문에 그렇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존래란 다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는 우상 섬기는 것은 그만큼 무서운 죄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섬기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죄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상 만들고 우상 섬기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상에 관해서 여러분들이 하실 일은 우상이 될 만한 일은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그리고 동양이나 서양이나 어디든지 공통된 우상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상으로 하는 것 하나는 돈입니다. 그 다음이 자식이고 최근에 와서는 건강입니다. 이 세 개는 앞으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또 젊은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우상이 있는데 젊은이들은 좀 다양합니다. 연예인들이나 스포츠맨을 우상으로 섬기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요즘 또 우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더 하지만 연세 드신 분들도 섬기는 우상이 하나 있는데 휴대폰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처럼 섬깁니다. 편리하긴 하지만 쓸데만 쓰면 되는데 밤낮으로 그것을 달고 다닙니다. 횡단보도를 지나면서도 보고 어떤 아이들은 용케 자전거를 타면서도 문자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특별히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섬기는 우상이 있습니다. 명예입니다. 이것을 이겨야합니다. 모든 것을 다 이기고 마지막에 명예라는 우상을 이기지 못하면 사람이 추하게 됩니다. 그런데 명예라는 우상은 은근슬쩍 들어옵니다. 안 섬기는 것처럼 하면서도 끌려가는 것이 명예라는 우상입니다. 조심해야합니다.
우상에 있어서 우리는 귀하게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 지혜가 있어야합니다.
한 퇴역장군이 있었습니다. 전선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 장군이 퇴역하고 난 후 차를 즐깁니다. 이 장군에게는 한 잔 마시고 나면 정성스럽게 닦아 둘 정도로 아주 귀한 찻잔이 있습니다. 이 장군이 어느 날 마신 찻잔을 씻어서 닦다가 찻잔을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 장군이라 역시 달랐습니다. 재빨리 떨어지는 찻잔을 낚아챕니다. 그러면서 큰일 날 뻔 했다고 한숨을 쉽니다. 식은땀이 흐를 뻔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군이 한참 있다 그 찻잔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서 깨버립니다. 그러면서 장군은 ‘전쟁터를 누리던 내가 이 찻잔 하나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다니…’ 하고 스스로 개탄하면서 버려버렸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귀한 것 좋은 것을 대할 때는 바로 이것입니다. 귀하게 여기지만 그러나 그것 때문에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쫓아다닐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이 귀하고 자식이 귀하고 건강이 귀합니다. 다 좋습니다. 취미도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길 줄 아는 믿음도 있어야합니다.
본문 4절과 8절에서 신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4절에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라고 말씀하시고 8절에서는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눈여겨 볼 것은 ‘그처럼 행하지 말고’(4절)라는 말씀과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8절) 라는 말씀입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신자들은 달라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은 달라야한다고 요구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진정한 신자라면 무언가 달라야한다, 세상 사람들과도 달라야하고 다른 사람들과도 달라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서는 욕심을 좀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유수한 교회가 많겠지만 우리 교회는 그 교회들과 좀 다르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분당소망교회 신자들은 다른 신자들과 좀 다른 신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다른 교회 지도자들과 무언가 좀 다른 교회 지도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자신에 대해서 분당소망교회 목사는 무언지 몰라도 좋은 의미에서 다른 목회자들과 좀 다른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변치 않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부터 계속해서 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은 좀 달라야한다,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 한다고 해서 그냥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통해서 하시고 계십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한다고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때마다 생각해 보아야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좋은 일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거부하시는 일이 아니라면 세상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한다고 하더라도 또 거기에 포함되지 않으면 나만 못난 사람이 되고 모자라는 사람이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시는 일은 따라하지 않는 다름이 있어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한편 신자라고 해서, 달라야한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자들은 내 자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그것을 내 것이라고, 내 인생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돈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서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들은 무엇이든 내 생각대로 내 맘대로 또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신자입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하고, 내가 하기 싫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 간에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찾아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하고 성경말씀을 공부해야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하나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오늘 본문에서는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나아가서’ (5절) 라고 장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배는 귀합니다. 여러분들이 예배드리는 것은 참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한 예배라도 내 마음대로 아무 곳에서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이 있습니다. 너는 여기서 예배드리라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가 있습니다. 거기서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또 예배드릴 때 드리는 예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 정도 드리면 되겠다, 내가 이것을 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드리고 싶은 그것을 마음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물이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님 법을 알아야합니다. 이것을 6절에서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고 가져다가 드리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대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예배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예배드리고 이런 순서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교회를 책임지고 나가고 있는 하나님의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바르다고 고민하고 기도해서 정한 예배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드리는 헌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렇게나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가운데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6절에서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 열매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첫 월급입니다. 언젠가 우리 교인 가운데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여 전문의가 된 후 첫 월급을 받고 첫 월급이니 내복 한 벌 해 입으라고 봉투를 가지고 왔습니다. 금액은 얼마 되지 않지만 첫 열매라고 하나님께 바치는 심정으로 목사에게 바친 것인데 제가 받아서라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드릴 수 있을지 생각한 그 마음이 귀한 것입니다. 참으로 오래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열매를 바치라고 말씀하신 이유에 대해서 두 가지 측면으로 보아야합니다. 하나는 이집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해방을 그렇게 거부하다가 마지막으로 항복하고 해방시킨 까닭이 있습니다. 이집트 장자들의 재앙 때문이었습니다. 이집트 장자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면서 여러분의 모든 첫 번째 것을 가지고 와서 오늘의 내가 있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노예로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므로 오늘 이렇게 자유로운 인생, 풍요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예물을 바치면서 ‘옛날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가?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고 누릴 수 없었는데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일헌금이든지 십일조든지 어떤 헌금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는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순진하게 순종하게 되면 그런 사람에게는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또한 특별하고 각별하게 임합니다. 좀 바보같은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순전한 믿음을 참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있어서 특별히 주의할 것은 무엇보다도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금액은 하나님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돈은 하나님께서 많이 가지고 계십니다. 좋은 것은 전부 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가지고 계시면서 이 많은 것을 누구에게 줄까 오히려 고민하십니다. 좋은 것, 많은 것을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마음으로 드리는 것 입니다. 금액 다과에 불문하고 ‘마음을 드리고 있는가? 그냥 습관대로 아무런 생각없이 드리는가?’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마지막 무렵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는 너희들 보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왜 그렇게 화가 나시면서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는지 그것을 말라기에서는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말1:7)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아무렇게나 바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쳤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나는 그런 것 안 받았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주겠느냐’(말1:8)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도 받지 않을 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와서 바쳤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바쳤다고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바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받은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것 때문에 너희들이 꼴도 보기 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말1:10) 그런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면서 나는 드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말1:13)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면서 번거롭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너무나 속상하십니다. 또 ‘코웃음치며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말1:13).. 헌금 내라고 한다고 코웃음 치고 마음에 하나도 없는 것을 가지고 와서 바쳤다고 하는 것을 속상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것 때문에 마음 없는 사람의 제물은 받기도 싫고 그런 사람을 만나기도 싫다고 하십니다.
다시 확인하십시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있어서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이 시간에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어떤 것을 바치든지, 큰 것을 바치든지 작은 것을 바치든지 간에 마음에 있는가 없는지는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
또 하나님께서는 예배 후에는 하나님 앞에서 즐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이 눈여겨 볼 귀한 말씀입니다. 7절에서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시므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 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드리고 난 후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즐거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예배 후에 가족들이 모여서 그렇게 하라는 것인데 같이 사는 가족이라도 그렇게 하고, 떨어져 사는 가족이라면 더욱 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입니다. 주일만큼은 같이 모여서 음식을 나누어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자녀 된 여러분은 잘 아셔야합니다. 하나님 명령입니다.
성경에서 이것을 여러 번 말씀하십니다. 10절과 11절에서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라고 말씀하시고 17절과 18절에서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은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도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택하신 곳이란 가나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즐거워할 때 우리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어야할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노비이고 또 하나는 레위인입니다. 이것을 19절에서 ‘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우리가 즐거워할 때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기쁜 일이 있을 때 우리만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항상 함께 즐거움을 나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기뻐하고 싶어도 기뻐할 것이 없는 사람들, 즐거워할 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번 성탄 감사 음악예배 때 특별히 독거노인들을 모셨습니다. 맨 앞줄에 모셨는데 티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앞으로 불러내지 않았습니다. 조용하게 맡아서 각 사람이 가서 그 분들을 따로 모시고 와서 함께 즐기고 선물을 드렸는데 참 잘한 것 같습니다. 조금 하고 난 후 크게 광고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금년에 여러분들이 내신 연탄 헌금으로 청주에 가서 일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모자라는 사람보다 나누는 손길이 더 많은 것 같아 멀리 청주까지 가서 그 일을 했습니다. 거기 가서 아주 힘든 사람들에게 연탄을 나누었고 기름보일러에 기름을 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름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아마 여러분의 귀한 헌금으로 그분들은 한겨울을 편안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사랑의 쌀독을 시행하려고합니다. 예배드리러 오실 때 쌀독에 쌀을 넣어두면 퍼가는 사람들이 편하게 퍼가기 위해서 다른 쪽에 두어 퍼갈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1월 달에는 설 되기 전에 라오스에 갈 예정입니다. 나환자들로부터 아주 긴급한 요청들이 많았는데 마침 설날도 되기 때문에 설 되기 전에 가서 나환자들에게 좋은 것을 나누는 일들도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따뜻한 겨울을 지내고 나름대로 풍요롭게 지낼 때 늘 없는 사람들, 못 먹는 사람들, 그 분들을 생각해야합니다. 기독교인들 항상 혹시라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는지,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는지, 학비가 없어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는지 눈을 돌려야합니다.
신자들은 누구보다도 항상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긍휼하신 하나님이고 긍휼한 우리를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신명기 14장 21절에서 ‘너는 염소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말씀하시면서 이런 것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맛은 이것이 더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얼마나 악한 노릇입니까? 새끼주려고 어미가 젖을 만들었는데 그 젖으로 새끼와 함께 삶아서 먹는 사람들.. 아주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1:13)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 중에 두려움을 가지고 보아야할 말씀이 있습니다. 16절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라는 말씀입니다. 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23절에서는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라고 말씀하시고 27절에서는 ‘네가 번제를 드릴 때에는 그 고기와 피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드릴 것이요 네 제물의 피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위에 붓고 그 고기는 먹을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보아야합니다. 하나는 문자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예 먹지 않으려고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 내 마음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순진하게 말씀하시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피 뿐만이 아닙니다. 신명기 14장 4절부터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에 대해서 쭉 말씀하십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도 우리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고 이제는 신약의 시대이므로 신약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쉽게 생각하지 말고 두려움을 가지고 이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마음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약간 어수룩숙하게 보여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두 번째는 담겨진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생명은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물론이고 동물의 생명도 심지어는 식물의 생명도 같이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조금 더 나간다면 사람에게는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생명같이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생명같이 여긴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까지도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를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간에 이 일에 대해서 우리 하나님은 혹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혹시라도 이렇게 하는 것을 싫어하시지 않을까? 늘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복입니다. 이런 경고를 수없이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쫓아낼 그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절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게 하실 때에 너는 스스로 삼가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29절-31절) 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다 거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13장 1절에서는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에게 우상적인 것을 권유하면 거부하라고 말씀하시고 13장 6절에서는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런 사람들까지도 다 거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혹시 여러분들에게 기적과 이적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또 그 일이 이루어졌어도 거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혹은 강제로 여러분들을 강제하는 일이 있고 위협하는 일이 있을 때, 그런 일에 있어서도 거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는 그런 사람들을 가차없이 죽이라는 말씀까지 하십니다. 이것에 대해서 성경은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신13:5) 라고 말씀하시고 8절에서는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라고 말씀하십니다. 13절에서 18절에서는 ‘너희 가운데서 어떤 불량배가 일어나서 그 성읍 주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확실한 사실로 드러나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차지한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구히 폐허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아니할 것이라 너는 이 진멸할 물건을 조금도 네 손에 대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신 다른 신에 대해서는 이처럼 강력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약 불순종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징계도 그만큼 무섭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순종하게 되면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이것을 25절에서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 라고 말씀하시고 28절에서 ‘네가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3장 17절에서는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를 그치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심 같이 너를 번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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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 빌레몬서 (빌레몬서 1: 1~14) | 관리자 | 2013-12-13 | 2051 |
624 | 마태복음(2) - 마태복음 2: 1~12 | 관리자 | 2013-12-13 | 1184 |
623 | 마태복음(1) - 마태복음 1: 18~25 | 관리자 | 2013-12-13 | 1315 |
622 | 초대 안디옥 교회(사도행전 13: 1~3) | 관리자 | 2013-12-13 | 1779 |
621 | 신명기(8) - 신명기 11: 8~17 | 관리자 | 2013-09-22 | 2764 |
620 | 신명기(7) - 신명기 8: 1~10 | 관리자 | 2013-09-15 | 1866 |
619 | 신명기(5) - 신명기 6: 1~9 | 관리자 | 2013-09-01 | 2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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