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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 안디옥 교회(사도행전 13: 1~3)
    2013-12-13 15:34:39
    관리자
    조회수   1781
    초대 안디옥 교회





    사도행전 13: 1~3 ═════════════════════



    교회에 대해서 실망을 한 청년이 존경하는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에게 “목사님, 제가 가는 교회마다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목사님은 교회에 대해서 많이 아실 것이므로 그 중에서 완전한 교회를 하나 소개시켜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알았네. 찾아보겠네. 자네도 찾아보게. 찾으면 나에게도 말해주게. 나도 그 교회에 나가려고 하네.” 그리고 목사님은 “그런데 자네는 그 교회에 나가지 말게. 왜냐하면 자네가 그 교회에 나가는 그 시간으로부터 그 교회는 자네로 말미암아 교회의 완전함이 깨어질 테니까 말일세.”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완전한 사람도 없습니다. 완전한 교회의 시작은 여러분들로부터 시작됩니다. 불완전한 교회를 여러분들이 보충해서 완전한 교회로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성도들의 의무이고 불완전한 사람을 도와서 완전한 것으로 이루어나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야 할 노릇입니다. 어쩌면 교회를 가리켜서 불완전한 교회이다, 문제가 있는 교회이다, 사람을 향하여 저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 교회에 문제를 만들고, 사람으로 하여금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기독교 교회 역사 2,000년 동안 끊임없이 외치는 소리가 있습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이 말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초대교회가 기독교 교회의 최고 모델이라는 말도 되고 또 그만큼 오늘날의 교회가 교회 본래의 모습, 있어야할, 보여야할 그 모습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초대 안디옥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초대 안디옥 교회가 생겨난 유래는 이러합니다. 기독교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를 받다가 예루살렘 교회의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당합니다. 이것을 기화로 기독교의 박해가 커집니다. 이것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흩어진 교인들이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살면서 교회일이나 가정일이나 세상일에 어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어려운 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좋은 일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흩어진 사람 중 몇 명이 안디옥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교회를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소문을 모교회이자 아직 하나밖에 없던 예루살렘 교회가 듣게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바나바를 안디옥에 목회자로 파송하였습니다.

    바나바를 중심으로 안디옥 교회는 매우 성장해 나갑니다. 교인수가 많이 늘어나자 바나바는 자기 혼자서는 이 교회를 섬겨나가기에 버겁다고 판단하여 이전에 기독교를 박해하다 개종한 사울이라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사울은 나중에 바울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흙 속에 묻힌 진주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들은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목회를 하였습니다. 이 두 분이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목회를 했더니 교회는 정말로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인 크리스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안디옥 교회를 이루어나가고 있었는데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이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바나바와 바울, 안디옥 교회의 중심이고 기둥인 사람, 절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이 두 사람을 찍어 선교사로 보내라는 지시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순종해서 두 분을 선교사로 파송하게 됩니다.



    이 안디옥 교회, 그리고 안디옥 교회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란 어떤 곳인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교회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교회의 지도자들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를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교회란 특정인 혹은 몇 몇 사람이 계속해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나가는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기독교 첫 교회인 초대 예루살렘 교회부터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이 세우신 열두 사도들이 모든 일들을 다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 모이지 않았을 때는 이들이 일을 다 했지만 교인 숫자가 늘어나자 사도들이 기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씀 연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나누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교회에 교회 지도자인 집사를 세우게 됩니다. 이 집사들로 하여금 말씀과 기도 외의 다른 일들을 담당하게 하고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부터 이 모습을 보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도 그러했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잘 이끌어갔습니다. 버거운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할 수도 있음에도 바나바는 함께 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대단한 진주 사울을 찾아서 두 분이 함께 목회를 했습니다. 이 두 분은 교회 목회자로 교회를 아름답게 잘 끌어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이 안디옥 교회는 이 두 사람만의 지도자만 있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는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나바와 사울 이외에도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곳입니다. 맨 처음에는 바나바가 주도했고 그 다음에 사울을 모셔 와서 바나바와 사울이 함께 교회를 이끌어갔습니다. 그 뒤에는 교회 지도자들을 더 모셔서 이들이 함께 교회를 이끌어 간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함께 교회를 이끌어 가는데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뽑아서 선교사로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두 기둥을 빼서 바깥으로 내 보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두 기둥이 빠졌으니 기둥을 보충해야하므로 다른 사람을 새로 뽑든지 기왕에 있던 교회 지도자들이 그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란 이 사람이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 두 사람이면 충분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둥으로 여기고 있는 두 사람도 얼마든지 뺄 수 있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세우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란 누가 있어야한다 또는 누구는 없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하는 첫 머리를 보면 베드로가 교회의 모든 것을 주도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베드로가 조금씩 뒤로 물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꼭 있어야할 것 같은 교회 수장인 베드로가 점차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잘못 보았나 의아해하고 있을 즈음 드디어 사도행전 15장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에 베드로가 아니라 다른 분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야고보 선생입니다. 어느덧 교회의 주도, 가장 중심에는 야고보 선생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교회는 한 두 사람 혹은 몇 사람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잘났든 못났든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두 번째 하시는 말씀은 너무 잘 아는 말이지만 너무 진리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에게 가장 먼 진리가 되어버린 교회의 주인, 교회의 최종 결정권자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서 많은 논의를 했고 사람들이 최고의 방안을 만들어냈다고 할지라도 일의 결정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이 안디옥교회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초대교회들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인정하든지 거부하든지 간에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고 거부하는 사람은 천지차이가 납니다. 만약 이 진리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죽을 고생을 다합니다. 모든 노력을 다 한들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40년 돌아보아야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알고 진작부터 수납하면 고생할 것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하면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거부하고 인정하지 아니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일하면서도 봉사하고 이런 저런 수고를 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하고 직분이 짐만 됩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직분을 맡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얼마든지 행복하고 편안한 길이 있는데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일이 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중요한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정도 그렇고 하는 사업도 풀리지 않습니다. 역사의 주인, 세상의 주인,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결국 하나님 뜻대로 간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고생만 하고 결국 제자리걸음으로 그 자리로 가도록 되어있습니다. 알게 되면 행복하고 건강합니다.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는 중요한 까닭은 연연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맘이 상하고 몸이 상합니다. 그것 때문에 다른 데 머리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피가 다 그쪽으로 몰리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야 될 피가 돌아가지 않고 소화도 안 되고 건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사업을 할 때도 그것이 풀리지 않기 때문에 피가 다 그쪽으로 몰리기 때문에 사업으로 피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인정하면 여기에 힘쓸 것도 없고 피를 돌릴 것도 없기 때문에 그쪽으로 다 힘을 쏟게 되면 가정도 잘 돌아가고 사업도 잘 돌아가고 건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바로 이런 데 있습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일의 결국은 하나님 뜻대로 된다는 것을 교인들은 알아야합니다. 교회는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를 뽑을 때 이것을 참 잘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죽었으므로 빈자리를 채워야했습니다. 열 두 사도의 열둘이라는 숫자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보궐 선거를 하게 되는데 베드로가 먼저 나서서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을 추천해주십시오.’ 라고 온 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두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그 추천방식이 어떠했는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추천된 두 사람으로 제비를 뽑았습니다. 아마 그릇에 흰 돌멩이 하나, 검은 돌멩이 하나를 넣어 각각의 돌멩이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합니다. 돌려서 그 중 하나가 튀어나오면 그것을 집어 결정했을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이렇게 사도를 뽑았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행1:26)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사도란 직분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직분인지 아십니까? 각 교회에 교인들은 자기들 목사님을 매우 귀한 존재로 압니다. 이 땅에 있는 수많은 교인들이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들은 있다가 없어지고 계속 바뀌어 갑니다. 2,000년 동안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목사님들이 있다가 없어졌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도는 열 둘 밖에 없습니다. 가룟 유다가 빠지고 맛디아가 들어갔지만 숫자는 그 열 두 명 더 이상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오실 때까지 더 이상 그 이름이 바뀌지 않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사람을 뽑는데 장난 같은 방법으로 뽑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결국은 하나님이 뽑으신다는 것을 초대교회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을 알았습니다. 누가 나서든 어떤 방법으로 일이 진행된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초대교회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잠언서 16장 33절에서는 그것을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라고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초대교회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아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초대교회들은 늘 힘써서 기도했습니다. 자기네들의 소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시옵소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늘 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도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첫머리에는 이것을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4) 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이런 곳입니다. 모여서 의논하고 회의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때 잠깐 하고 마는 것이지 사실 회의실도 없어야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를 뽑을 때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행1:24-25) 라고 기도했습니다. 교회가 할 일은 좀 과하게 표현하면 기도밖에 없습니다.



    안디옥 교회도 그러했습니다. 1절에서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라고 교회 지도자들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들 지도자들이 주도적으로 기도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절에서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어떤 사안이나 안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늘 금식하면서 기도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잠깐 기도하는 것이나 기도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없는 사람처럼 되고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러자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를 지도하신 것입니다.

    교회일은 세상에서 경험이나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 안건을 만들어내고 방법을 만들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아야합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2절) 하나님께서 다 지시하십니다.

    기도의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도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늘 고민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머리는 조금만 쓰고 기도하십시오. 머리를 써봐야 별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2절) 라고 그들을 보내라고 말씀하시자 ‘이에 금식하여 기도하고..’(32절) 안디옥 교회는 또 기도했습니다. 교회는 이런 곳입니다. 다른 일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큰 것, 무엇보다도 많이 할애해야할 것이 기도입니다.

    여기에 ‘기도란 하나님의 사랑스런 간섭과 도움을 얻는 수단이다.’ 라는 아주 중요한 정의가 하나 나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이 일을 하려고 하니 꼭 좀 밀어주십시오. 이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돈 좀 보내주십시오.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은 기도이긴 하지만 기도의 본 모습은 아닙니다. ‘하나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말씀해주십시오. 우리가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데 맞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이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 간섭을 받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혹시라도 내가, 우리가 주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주님만 대장인데 절대적으로 우리가 대장이 되면 안 됩니다.’ 라고 또 기도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보내라는 하나님 뜻을 알게 되자마자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이 순종했지만 그 과정 중에 그들 마음에 얼마나 어려움이 있었는지 보아야합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어떻게 보더라도 안디옥 교회의 기둥이고 중심입니다. 빼면 무너질 것 같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이 교회를 세웠고 지금까지 이루어왔고 이렇게 성장 부흥시킨 사람들인데 이들을 빼라고 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이 두 분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가? 다른 분을 선교사로 보내면 되는데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는가?’ 라는 생각이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보다 우리 교회를 훨씬 더 사랑하시고 우리를 너무 잘 아신다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둥이 무너질까 걱정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둥이 무너지는 것이 더 좋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 더 좋고, 만약 이 두 사람이 없어서 교회가 안 된다면 차라리 그것이 낫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 교회를 훨씬 더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를 여러분보다 하나님이 훨씬 더 사랑하십니다. 이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참된 기독교인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이 가장 잘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것인 것 같습니다. 모두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은 정말로 잘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말뿐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내 주장을 관철시키고 나의 주장을 이루기 위해서 다투고 큰소리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내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사람이 가장 못난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교회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잘난 사람이 가장 못난 사람이고 사람들 앞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실은 가장 미련한 사람입니다. 내 의견을 접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 많이 받아들여지는 곳, 그런 곳이 교회이고 그런 사람이 가장 똑똑한 사람이고 진짜 어른입니다 .



    바라기는 여러분들이 이런 교회를 이루십시오. 문제가 없는 완전한 교회를 하나님께서 만드셔서 여러분에게 선사하시는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만드셔야합니다. 여러분의 아내, 여러분의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아내, 남편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여러분이 채워나가십시오. 그런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고 정말로 똑똑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짜로 똑똑한 사람, 참된 어른이 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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