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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3)-마태복음 3: 1~10
    2014-11-26 15:05:48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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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3)







    마태복음 3: 1~10





    예수님 태어나시고 한 30년 쯤 지났을 때입니다. 요한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유대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합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1-2절)



    세례 요한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러 명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이 요한이 한 일 가운데 가장 중심적인 일이 세례였기 때문에 세례라는 이름을 덧붙인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맨 첫 번째 선포한 메시지는 ‘회개하라’ 라는 말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서 회개에 대해서 많이 들었을 테지만 오늘 이 시간에 회개라는 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분명한 정의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회개는 일반적으로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힘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회개의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이 의미도 있고, 여기에 더해서 적극적으로 선을 행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회개의 의미는 이중적입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것도 있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기독교 회개의 의미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라고 세례요한이 말한 8절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대단한 자긍심과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런 자긍심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자부심, 자긍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만들어낸 삶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것인데 하나님은 아무나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그럴만한 사람을 선택하고 또 선택받은 뒤에는 그런 사람으로 살도록 하시는데 그런 삶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나면 반드시 그에 따른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믿기만 하면 반드시 착한 일을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바르게 살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믿기도 하지만 그에 따르는 삶을 산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이기만 하면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아브라함의 혈통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될 수도 없다고 아주 무섭게 그리고 강하게 선포했습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9)



    이 말씀은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면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 천국에 간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길바닥에 흩어져 있는 이 돌들도 천국가고 구원받게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 재미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말씀하시는 것에 이런 투가 많습니다. 너희들이 웃기면 나도 웃기겠다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는 ‘회개하라’ 라는 메시지였고, 두 번째는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는 메시지입니다.



    천국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천국에 가까이 왔느니라’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실 때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좀 더 풀이하면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통치하셨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저 멀리서 통치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그 하나님이 여러분 앞에 직접 나타나셔서 친히 통치하실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여러분 앞에 오신다는 말씀이 세례요한의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례 요한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었는지에 대해서 4절에서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세례요한의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는 자기선언입니다. 나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 단 한 가지 내가 해야 할 일 그것만 알고, 그것만 위해서 사는 사람이다. 그것을 위해서 태어나고 그것을 위해서 죽을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라는 3절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일을 위해서 왔기 때문에 이 일 외에는 나는 관심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이 새겨야할 가르침의 말씀입니다. 목사든지 장로든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누구든지 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종의 존재 목적은 주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이 주인처럼 차리고, 주인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하고, 주인처럼 이름을 내려고 하고, 주인이 내야할 얼굴을 자기가 대신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례 요한은 전적으로 그것을 거부합니다. 나는 그것과 상관없다, 나는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이 그런 옷을 입고 그런 음식을 먹었다는 말입니다.







    이 세례요한에 대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지? 그렇다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아니지? 그런 사람은 왕궁에 있지 않느냐? 그러면 선지자를 보러 나갔더냐? 옳다, 저 세례 요한이 바로 선지자인데 다른 어떤 선지자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 라고 최고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나왔습니다.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5-6절)



    유대인들은 참으로 오랫동안 진리에 갈급했습니다. 400년 동안 진리다운 말씀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내 종이다.’ 라고 할 만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400년 동안 보내지 않았습니다. 보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이 아닌 사람의 말은 잘 들으면서도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 말은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은 사람, 하나님의 종이 아닌 사람,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많이 갔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그런 사람들을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웬만한 눈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생각 있는 유대인들은 갈급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가? 어떻게 하면 들을 수 있을까?’ 갈급했지만 여기 가도 저기 가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세례요한이 왔습니다.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종이 왔다고 생각하고 몰려들었습니다.







    이렇게 몰려온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받는 세례는 오늘날 세례와는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오늘날 세례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관수라고 하는 세례로, 물을 위에서 뿌리게 되면 아래로 물이 흘러가기 때문에 세례 받는 사람은 상징적으로 물속에 잠깁니다. 그러므로 물속에 들어갔다가 물이 흘러 내려가면서 물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물은 곧 죽음을 말합니다. 내 속에 있는 모든 죄들, 그리고 죄를 지은 옛 사람은 죽었다는 것으로, 죄는 씻기고 죄지은 옛 사람은 죽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죄를 씻기고 새사람이 되었는데 새사람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새로운 사람, 죄 씻긴 사람이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한 몸이 되었다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은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참되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 그리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합해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예수님이 사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에는 두 번째 의미는 없었습니다. 아직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죄 씻음의 의미만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이 베푸는 세례 자리에는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그리고 사두개인들이 왔습니다. 그 사람들이 오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세례 요한은 그 사람들이 오는 것을 두고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7절) 라고 아주 심하게 책망했습니다. 독사라는 말도 상당히 무섭지만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라는 뒤의 말씀은 더 무섭습니다. 저주를 한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 세례 받고 돌이키면 좋을 텐데 세례요한은 왜 이렇게 무섭게 책망할까요?



    바리새인이란 히브리말로 ‘패리시즈’로 구별되었다, 다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맨 처음 출발할 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 믿는 다른 사람들과도 달리 진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표방하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처음에는 사실 그랬습니다. 잘 믿고 바르게 믿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무언가 달랐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도 조심해야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처음에는 잘 믿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가면 자꾸 바뀝니다. 직분을 받을 때도 처음에는 잘 하다가 세월이 지나가면 변합니다.



    이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구별되고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바른 삶을 살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본래의 의미는 없어지고, 사람들에게 자기를 내세우고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고 존경받는 것 등 이런 것들만 남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미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을 가리켜서 겉모습은 멋진데 존경하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겉으로 인사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얼굴 내고 이름 내고 인사 받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두개인들도 당시 종교지도자들인데 이들은 종교를 기반으로 사회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에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어서 이런 사람이 없지만 그 당시는 종교지도자들이 정치 사회 모든 권력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끊임없이 권력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재물 모으는데 열중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면서 돈 맛에 들여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사람들을 바르게 지도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는 까닭이 이것입니다. 위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 세례요한이 세례 베푸는 곳에 찾아온 까닭은 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도 이처럼 회개할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도 먼저 회개에 앞장서는 사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자기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거기에 온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사받기 위함입니다. 세례 요한이 이것을 알고 책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마23:3)



    즉 말은 잘 하는데 행위는 엉망이라는 말씀입니다.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고 아주 무섭고 강하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마23:4-5)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이 겉으로 보기에 참 괜찮은 것 같은 그 좋은 곳에 온 사람들을 무섭게 책망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책망하는 말 가운데 우리 모두 다 두려워하고 명심해야할 말이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8절)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의 모습, 겉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과 똑같은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쉽게 보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당연한 말씀이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두렵게 보아야합니다.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오늘 기독교 신자들 증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은 10절에서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 판단에 우리가 바른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지 못할 때, 특별히 그 중에서도 종교 지도자들이 그런 삶을 살지 못할 때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지탄받는다면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절 말씀 때문에 더 두려워해야합니다. 사람들이, 세상이 우리를 보고 속으로 지탄하게 되면 하나님도 잠시는 그냥 봐주고 기회를 주십니다. 행여나 돌아올까 기다리시다 그래도 안 돌아오면 어쩔 수 없이 10절 말씀처럼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힘쓰고 애써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위선하지 말아야합니다. 겉과 속이 같아야합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신앙의 모습과 속이 같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합니다. 혹시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지 자꾸 돌아봐야합니다. 두 번째 삶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부디 선한 일을 많이 하십시오. 큰 돈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 형편에 맞도록 선한 일을 많이 하십시오. 이것이 곧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진짜로 믿는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세례 요한은 오늘 말씀 중에서 본론 중의 본론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11절-12절)



    자기 존재 목적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나는 이렇게 말로만 하고 끝나지만 내 뒤에 오시는 그 분은 나와는 달리 말로만 끝내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내 존재, 나의 하는 일, 나의 모든 목적은 나 자신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지켜야할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요한복음 3장에서 28절에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 라고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일 뿐입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또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요3:29) 라고 말했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입니다.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는데 나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나는 신랑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충만합니다’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이어서 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라고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참으로 귀한 것은 ‘이 모든 말들을 어디서 했는가?’ 입니다. 지금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세례 요한이 메시야인 마냥 구세주인 것처럼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거기서 한 것입니다. 자기 혼자 또는 몇 몇 사람이 있는데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아닙니다. 내 뒤에 오십니다. 그분이야말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말뿐 아무것도 없지만 그 분은 다릅니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세례요한의 신앙은 그 후에도 나타납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13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러 가셨는데 그는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14절) 라고 거부했습니다. 도저히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하는데 어떻게 세례를 받겠습니까?’ 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15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15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세례 요한은 허락했습니다.







    여기서 자세히 보아야합니다. 성경을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아무리 부탁해도 그런 부탁을 들을 만한 분이 아닙니다. 자기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락했습니다. 그 까닭에서 여러분이 은혜를 받아야합니다. ‘나는 절대로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 존귀한 분이 나에게 세례를 받아서는 될 일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니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라고 생각하고 순종하고 허락한 것입니다. 이것이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닌 것처럼 하면서 슬쩍 인사만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이 아무리 그렇고 내 생각과 내 주장이 그렇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다른 것을 말씀하시면 그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것 때문에 더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추구하고 지향해야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일에 ‘그저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이다’ 라고 생각해야합니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고 또는 하기 싫다고 할지라도, 내가 이루고 싶은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뜻이 다른 곳에 있다면 ‘알았습니다.’ 하고 순종하고 이루어나가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습니다.







    이런 세례 요한을 가리켜서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7장에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7:2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칭찬입니까? 바라기는 여러분들이 이런 칭찬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여러분, 이런 여러분을 향하여 끊임없이 지향하고 추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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