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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기(5) - 신명기 6: 1~9
    2013-09-01 11:49:07
    관리자
    조회수   2434
    신명기(5)





    신명기 6: 1~9 ═════════════════════



    이집트의 노예살이로부터 해방된 이스라엘 민족은 단숨에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했어야했습니다. 까닭은 뿌리 깊은 불신앙 때문입니다. 뿌리 깊은 불신앙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일이 있을 때 그것이 불순종으로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은 끝까지 불순종하다가 그만 한 세대가 광야에서 다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드디어 40년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바로 앞에서 가나안에 들어갈 출애굽 2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설교를 계속합니다.



    성경은 모세가 설교를 하고 있지만 그 설교의 본래 근원이 어디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은 모세가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하는 말씀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지만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세의 설교의 핵심은 아주 분명합니다. 6장 바로 앞에 있는 5장 마지막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말씀이 이 말씀으로 뭉뚱그려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 그리하면 멸망하지 않고 산다, 복을 받는다, 그리고 행복하게 오래 산다!’ 이것이 전체의 내용입니다. 이것을 6장 2절에서도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장구란 길 것이라는 말씀인데 그냥 오래만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오래 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순종하면 그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광야에서 쓸데없이 40년간 방황하며 떠돌아다니면서 고달픈 삶을 살았던 원인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하나님 은혜로 가나안에 들어가는데 거기서 여러분이 살 수 있는 길은 딱 하나이다. 여러분의 선조들이 범했던 불순종이 아니라 순종하는 길만이 여러분들이 살길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3절에서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제대로 살고 행복하게 살고 건강하게 노래하면서 웃으면서 살 것인지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압축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4-5절)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람씀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잘 살게 될 것이고 복을 받게 될 것이고 행복하게 오래 살 것이라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데 하나님 말씀은 한 단계 한 단계 계속해서 구체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복을 받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인가에 대해서 먼저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6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슴 속에 새기십시오. 여러분 자녀를 가르치거나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이런 저런 일을 하는 것보다 맨 우선적으로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여러분 가슴 속에 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알겠습니다. 나는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다. 뜻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다.’ 라는 것을 가슴 속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가르칠 때에도 이것이 인격적으로 영혼 속에 담겨져 있지 않으면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15:1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 마다 하는 어나운스먼트가 있습니다. 산소마스크를 말하면서 이러 이러한 경우에 산소마스크가 내려올 것인데 그때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전에 자신이 먼저 산소마스크를 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도와주라고 합니다. 맨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오해를 합니다. 어린 아이에게 먼저 산소마스크를 해주어야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역사를 통해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하면 그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제일 잘하는 것이 내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하고 그 다음에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아무리 많이 공부를 했어도 또 계속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계속해서 공부해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장로님, 안수집사님, 권사님들, 교회 직분자들이 먼저 공부한 후 가르치기도 하고 삶으로 보일 수 있는 길은 먼저 내 가슴 속에 가득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말하는 것이 빈 양철 같은 소리가 납니다. 간혹 아이들이 어릴 때는 말을 잘 듣지만 어느 때가 되어 어머니 속에, 아버지 속에 무엇이 들어있지 않으면 그 말이 아이들 가슴속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부모들이 계속해서 공부해야합니다.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계속해서 교양을 쌓고 인격을 수련해야지 자녀들 가슴 속에 영양가 있는 말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지 바르게 지도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들, 여러분들 가슴 속에 이 하나님 말씀을 담아야합니다.



    그 다음에 7절에서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르쳐야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자꾸 가르쳐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내가 낳은 자녀뿐만 아니라 교회에 있는 자녀들, 세상에 있는 자녀들을 가르쳐야합니다. 하나님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있어서 주의할 일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어머니로서 가르쳤다는 책임만 면하려고 하는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도 아시고 아이들도 압니다. 제대로 바르게 가르쳐야합니다. 내가 정말로 가르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가르쳐야합니다.

    또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를 가르쳐도 내 아이들이 내 손자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야합니다. 우리 후학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야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많은 아이들을 모아서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겠지만 이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많든 적든 몇 명이라도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아이들이 세상을 끌고 나갑니다.



    또 자녀들, 우리 후학들을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7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디에 가든지, 어떤 때이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계속해서 가르치라는 말씀인데 어떻게 보면 좀 지혜 없고 약간은 미련한 어머니, 잔소리 많은 어머니 모습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누가 했습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지혜롭고 어떤 것이 미련한가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듣기 싫어도 또 말하라는 말씀입니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잘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어떤 때에든지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곳곳에 표시를 하고 기록하여 여러분도 보고 여러분의 자녀들도 보고 계속해서 누구든지 볼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온 식구들이 볼 수 있도록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 집에 왔을 때에도 볼 수 있도록 표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아이들 장난 같습니다. ‘너는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8-9절) 마치 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쇼같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아이들 눈에 배우처럼 보이고 좀 우습게 보여도 그렇게 하라는 그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이 보도록 하라, 관심을 끌도록 하라, 흥미를 끌도록 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거나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지면 그때에 말하라는 말씀입니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의 온 집에 베푸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하심이라’(20-24절) 또 2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유월절 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병과 쓴 나물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교병은 딱딱하고 맛 없는 빵이고 쓴 나물은 아무런 양념이 없는 나물입니다. 둘 다 먹기 싫은 음식들입니다. 그리고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말씀하십니다. 소화가 되지 않고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레 동안 집에서 누룩을 일체 없도록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매년 이 행사를 합니다. 누룩을 없애는 일을 함에 있어서 쇼를 하듯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이 무엇을 하는지 졸졸 따라다니면서 누룩이 어디 있는지 찾아다닙니다. 심지어 장롱까지 열어 뒤지면서 누룩을 찾습니다. 누룩을 넣어두지 않았는데도 찾는 것입니다. 그러다 이상하게 생각한 아이들은 어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물어볼 때 출애굽기 12장 26절과 27절에서는 ‘이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라고 대답할 말씀을 다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게 되면 꼭 말을 붙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믿으려고 하다가도 너무 지겨워하고 싫증을 낼 수가 있다고 부정적으로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도 모르고 이런 말씀과 이런 지시를 하셨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 오늘 우리 교회, 오늘 교회의 부모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은 너무 고상하게 신앙합니다. 너무 지혜롭게 믿고 가르치려고 하다가 기독교의 본질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상당하게 이것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과거에 겪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늘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지만 절대로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뒤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이 늘 우선이고 중심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생각에는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미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니다, 너희들은 나를 믿지 않는다, 너희들은 이미 떠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끝까지 절대로 그런 일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그들은 하나님 우려대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여기서 잘 알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는데 이스라엘만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도 떠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에, 우리와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굳게 약속했기 때문에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마지막끝까지 떠나시지는 않겠지만 중간에는 얼마든지 떠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 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멀리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도 우리를 떠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기어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메주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 구절을 적은 쪽지, 때로는 그것을 담은 통을 말합니다. 쇠붙이로 만든 네모통도 있고 가죽으로 만든 네모통도 있습니다. 그 안에 든 것 혹은 전체를 ‘메주자’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현관, 바깥문 오른쪽에 붙여놓고 드나들면서 그 앞에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손을 대고 다시 그 손을 입에 대고 입술을 맞춥니다. 하나님 말씀에 직접 입 맞추는 결례를 하지 않기 위해서 간접으로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지금도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하는데 이때에 이마에 ‘메주자’ 통을 달고 손목에 줄을 칭칭 감아서 멥니다. 혹 미국 국내선 비행기를 타게 되면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시간이 되면 모이고 혹 그 중에서 랍비가 있으면 랍비가, 랍비가 없으면 그냥 모여서 기도를 합니다. 좀 유별납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망한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참한 역사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요령껏 신앙을 하다가 믿음을 다 잃어버리고 비참한 일을 당한 유대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하든 간에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순종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강력하게 지시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걱정하셨던 것은 먹고 살만하게 되었을 때의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오늘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습니다. 경제적으로 살만하게 되었을 때, 육신적으로 평안함을 얻었을 때, 가정적으로 화목함과 풍요로움을 얻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걱정이 참 많으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10-11절).. 우리로서는 큰 복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때가 제일 걱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12-13절) 이 말씀을 읽으면서 느끼는 뉘앙스는 하나님께서 애절하게 부탁하시고 애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제발 나를 잊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고 무엇을 무척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또 거기에 이어서 질투를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14-15절) 라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간절하게 때로는 강력하고 무섭게 경고하십니까?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행복하도록, 오래 오래 건강하게 잘 살도록, 여러분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와 행복을 오래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를 성경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15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1세대들이 이렇게 당했기 때문입니다. 1세대들은 이러한 이유로 없어져버렸습니다. 이런 일이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을 한없이 사랑하시지만 무조건적으로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면 끝까지 사랑하시지만, 사랑하시다가 끝내 여러분들이 사랑할만한 가치가 없으면 청산해버립니다.



    최근에 우리나라 재벌 그룹 중 한 건설회사의 채권단이 그 재벌을 계속해서 존속할 것인지 청산할 것인지 심사하다가 존속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금융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경제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몇 년 전에 우리나라 최고 건설회사 중 하나가 같은 일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때 채권단이 최종심사 후 그 회사는 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하여 청산시켜버렸습니다. 출애굽 1세대는 이 문제에 걸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몇 번을 봐주셨는데도 또 끝까지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청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다 죽어버렸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병원에 환자를 심방가시면 ‘하나님, 저 사람이 살릴만한 사람이면 치료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 말은 살릴만한 사람이 아니면 내버려두시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진짜 기도입니다. 그래야 정신 차립니다. 아무나 살려주면 이 땅이 이상하게 되고 이런 사람이 교회에 다니면 이상한 교회가 되어버립니다. 교회 아닌 교회가 되어버립니다. 청산할만하면 청산하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존속할만한 가치가 있을 때 존속시키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강하게 때로는 간절하게 때로는 애원하시듯이 말씀하시는 까닭은 우리를 향한 소원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행복하게 잘 살고 웃으면서 살고 이 풍요를 오래도록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하신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십시오. 손목에도 메고 이마에도 메고 문설주에도 붙이고 바깥문에도 붙이고 현관문에도 붙이고 기록하여 보고 또 보고 배우고 또 배우라고 하십니다. 가르침에 있어서도 자녀들이나 후학들을 앉아서도 가르치고 누워서도 가르치고 길을 걸으면서도 가르치고 잠자면서도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까닭은 또 보고 또 배워서 정직한 사람이 되고 선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복 받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키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17-18절)..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면 정직해집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19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얼마나 공평하십니까?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냥 베풀지는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말씀을 잘 순종해서 정직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할 때는 끝까지 베푸십니다. 지금까지 받은 복보다 몇 십 배, 몇 백배 복을 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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