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에스라강단
성령님이 오시면....
사도행전 13:1~3
초대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를 피해서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안디옥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가 제법 되었습니다. 이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것이 안디옥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교인 중 한 사람을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로 보내게 됩니다. 그 목회자가 바로 바나바입니다.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를 떠나서 안디옥에 가서 목회를 하자 교회가 크게 부흥이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일을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되자 바나바는 자기 혼자 할 것이 아니라 동역자 한 분을 모셔야겠다고 생각해서 유대교에서 기독교를 개종한 사울을 찾아갔습니다. 다소라는 곳에서 은둔해 있는 이 분을 힘들게 모셔 와서 같이 안디옥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섬기자 세상 사람들은 안디옥 교회 교인들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교회지도자들은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성경은 안디옥 교회 교회지도자들이 모여서 기도한 것에 대해서 보통 기도가 아니라 금식기도를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안디옥 교회에 특별한 사안이나 중대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께서 안디옥교회에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바나바와 사울 두 사람을 떼어서 내가 시킬 일을 위하여 구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의 그 지시에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이 또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구체적인 지시를 받은 것 같습니다. 이들은 두 사람을 안수해서 선교사로 보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에 복음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 다음 유럽으로 복음이 갔고 영국으로 복음이 갔고 다시 북미로 갔고, 전 세계에 복음이 퍼지게 되었고 한국에도 복음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독교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일을 보이십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먼저 바나바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오기 전 예루살렘 교회에 있을 때였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예루살렘 교인들은 다 성령충만했고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4:32)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행4:34)
그 당시는 모두가 다 가난한 시절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교회에 왔습니다. 그런 시대에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다들 부족한 가운데서도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내 것을 교회에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넉넉한 사람이 자기 것을 내놓는 것 쉽지 않습니다. 상당히 많이 가진 사람도 자기 것을 내놓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없는 사람이 자기 것 내 놓는 것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모두가 가난한 그 시절에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심지어 땅과 집을 팔아서까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에 냈습니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라 있다고 해보아야 조금 더 가지고 있을 뿐이었을 그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성령님이 오시면 욕심이 없어집니다. 욕심이 없어지는 것은 어마어마한 축복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의 두 배를 복으로 더 받는다고 해도 욕심 없어지는 것보다 더 행복하지 않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보다 줄어드는 일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욕심이 없어지면 없어지기 전보다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넉넉해도, 넘치게 가지고 있어도 행복하지 못한 까닭이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가난합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불행한 경우를 자주 봅니다. 더 많이 가졌는데 왜 그럴까요? 충분히 더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 더 평화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까닭은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욕심이 없는 사람은 가졌어도 행복하고 못 가졌어도 행복하고 충분히 부자로 살 수 있습니다. 가졌든지 못 가졌든지 혹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성령님이 충만하면 걱정이 사라집니다. 염려가 사라집니다. 그것은 노후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걱정거리에 대해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문제를 우리 주님께서 다 아시고 하신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
그리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아주 재미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마6:34)
정확하게 보시기 바랍니다. 내일 염려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 일은 오늘 염려하지 말 것은 물론이고 내일에 가서도 너희들이 염려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내일도 염려하지 말고 살아라, 나 하나님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로 여러분들이 걱정할 수밖에 없고 누가 보아도 걱정해야할 일, 그런 걱정거리에 대해서도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입니다.
이 무렵 안디옥 교회에는 바나바와 사울 이외에 다른 지도자가 세 사람 더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의 가장 중심적인 지도자는 바나바와 사울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중심적으로 안디옥 교회를 이루었고 부흥시켰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교회로 가르쳤습니다. 그럼에도 성령님께서는 하필이면 중심 되고 지금 안 계시면 안 될 것 같은 그 두 분을 뽑아서 선교사로 보내라고 지시하셨을까요? 아마 안디옥 교회 교인들 모두다 걱정이 많이 되었을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저렇게 하시는지 충분히 이런 걱정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걱정거리는 있었지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성령님이 충만하면 이렇습니다. 아무리 큰 걱정거리가 있어도, 누가 보더라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성령이 오시면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걱정이 안 생깁니다.
또 성령님이 오시면 순종하게 됩니다. 그것도 절대적인 순종을 하게 됩니다. 순종을 하고나면 이런 일이 생길까 저런 일이 생길까 하는 마음에 걱정거리가 많이 생길 것 같은데 성령님으로 순종하게 되면 걱정거리가 안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마음이 편안합니다. 아무런 걱정거리가 없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보십시오. 아마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교사를 보내라고 하시니 보내는데 두 분 말고 다른 사람을 보내면 될 것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이런 저런 다른 방안을 찾으려고 애를 쓸 수도 있었겠지만 안디옥 교회는 일체 그러지 않았습니다. 소위 이런 말, 저런 말 군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시키시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게 되면 아주 좋은 의미에서 단순하게 됩니다.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것은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이것 생각하면 저것이 걸리고 저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걸립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충만해지면 정말로 좋은 의미에서 단순해집니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좀 바보 같고 생각을 덜 하는 사람같이 보여도 당사자는 얼마든지 평안할 수 있고 바보 같지 않습니다. 인생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혹은 세계교회들이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까닭도 바로 이것입니다. 단순함이 없습니다. 순진함이 없습니다. 너무 생각이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성령님이신데 똑똑한 사람들이 교회의 주인노릇하려다 보니 그렇게 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러면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아시게 되고 여러분들은 절대적으로 순종하게 되고 여러분의 마음은 평안해집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 내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일을 하는 것보다 나는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어 그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보다 짧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성령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우리가 경험한 것보다 성령님께서 경험을 덜하셨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우의 수보다 성령님의 경우의 숫자가 더 적겠습니까?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보다 더 아시고 더 많이 경험하시고 계산도 훨씬 잘 하십니다. 그런 성령님께서 지시하셨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순종입니다. 가장 잘 하는 것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거기에 여러분들의 능력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능력은 다른데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행복도 세상의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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