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에스라강단
신자의 권세
창세기 49:22~26
야곱이 이집트로 이민간지 17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죽을 날이 가까워왔습니다. 야곱이 자기가 죽을 때를 알고 자식들을 다 불러 모아 마지막으로 축복을 합니다. 첫 번째인 맏이 르우벤부터 시작해서 열두 아들을 차례차례 하나하나 축복하는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요셉을 위한 야곱의 축복으로 대단한 내용입니다.
먼저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22절) 라고 말했습니다. 무성한 가지라고 말하면서 그 무성함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말합니다. 샘에는 늘 물이 있고 물기가 옆으로 새어져나갑니다. 그 샘의 물기가 요셉의 나뭇가지에 늘 물을 공급하기 때문에 요셉의 나뭇가지는 무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지는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라는 23절 24절의 내용도 22절에 못지않습니다. ‘사람들이 요셉을 미워해서 요셉에게 활을 쏘았는데 그 사람들이 쏜 화살은 요셉에게 미치지도 못했다, 그러나 요셉이 쏘는 화살은 다 백발백중 명중했다, 그 요셉이 쏘는 화살을 맞고서는 견딜 자가 아무도 없다, 누구든지 요셉을 대항하는 자마다 요셉이 쏘는 화살에 다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축복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야곱은 이렇게 요셉을 축복하면서 요셉이 받는 그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아주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씀입니다. 모든 복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단하다는 것은 사람의 눈에만 대단한 것이지 하나님 눈에는 다 똑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그는 정말로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축복하면서 그 근거를 ‘하나님의 손을 힘입음이라..’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축복을 하는 야곱의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조금 이상하고 야릇한 무엇이 있습니다. 24절에서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야곱이나 이스라엘은 같은 사람 즉 자신입니다. ‘나의 목자의 손을 힘입음’ 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왜 자기입니까? ‘요셉, 너의 하나님, 너의 목자의 손을 힘입음’ 이라고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25절에도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라고 말씀하는데 네 아버지가 누구입니까? 요셉의 아버지 즉 야곱 자신입니다. 자기를 꼭 끼워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런 말할 자격이 있는 것 같습니까? 어디를 보아도 야곱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보시기에 예쁜 구석이라고는 별로 없었습니다. 하나도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어머니 태속에 있을 때부터 형과 싸운 야곱이었고 세상에 나올 때에도 형보다 먼저 세상에 나오겠다고 발꿈치를 잡은 야곱이었습니다. 태어나서도 형이 되고 싶어 온갖 재주를 다 부렸습니다. 형이 허기져서 지쳐있을 때 팥죽 한 그릇을 가지고 와서 기어이 형의 자리를 빼앗았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 이삭이 죽기 전에 장남에게 축복하겠다는 정보를 알고 어머니와 공모하여 형이 사냥 나간 사이 어느 틈에 가서 아버지가 장남에게 줄 축복을 다 받는 못된 짓을 했습니다. 이렇게 당하다 형 에서가 드디어 견디지 못하고 동생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가정불화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야곱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하나는 죽은 아들이 되고 또 하나는 죽이는 아들이 되어서 자식 둘 다 잃어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칼부림을 막기 위해서 야곱을 외삼촌 즉 자신의 오빠 집으로 피신을 시켰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어머니 아버지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했습니까?
가는 길에 하나님을 만났는데 거기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챙겨주시면 하나님을 꼭 섬기겠다는 것과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반드시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도망갈 때는 급해서 약속을 했고 맹세까지 했지만 먹고살만하니 그 약속을 새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무려 이십 년 동안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야곱에게 큰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이십 년 동안 함께 살던 외삼촌 집 사람들 외삼촌과 외사촌들과 사이가 크게 나빠져 위기에 빠졌습니다. 위기에 빠진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를 지켜줄 테니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살만하니 또 잊어버린 것입니다. 거의 평생이 이러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실만한 일을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야곱이 어떻게 나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더구나 요셉이 어떤 사람입니까?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요셉입니까? 이런 요셉 앞에서 너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의 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라는 26절 말씀은 더 가관입니다. 나 야곱의 축복이 네 할아버지 이삭이나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축복보다도 훨씬 능력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한다면 네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인 이삭이나 아브라함의 축복보다 너의 아버지 나 야곱의 축복이 훨씬 더 능력이 있고 더 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나, 너의 아버지 때문에 네가 그렇게 복을 받은 것이고 앞으로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감히 자기를 자기 아버지 이삭, 할아버지 아브라함에 비교할 수 있습니까?
이제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 야곱이 완전 헛소리하고 있고 자기 아들에게 거짓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완전히 착각 같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혹시라도 야곱의 그 생각과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분명한 것은 적어도 야곱 자신만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거짓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 스스로는 내가 비록 한평생 시원찮게 살았고 하나님께 잘한 것이 없고 예쁨 받을 구석이라고는 별로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나를 한 번도 미워하신 적이 없고 싫어하신 적이 없고 너무도 사랑하시고 잘 챙기셨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형에게 그렇게 나쁜 짓을 하고 외삼촌 집으로 도망갈 때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다. 외삼촌 집에서 이십 년 동안이나 희희낙락하면서 하나님을 한 번도 찾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아니하시고 위기 때마다 나타나셔서 나에게 도움을 주시고 내 길을 안내해주셨다. 외삼촌과 외사촌들이 나를 치려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미리 그들에게 나타나서 선악 간에 야곱에게 말하지 말라고 미리 손을 쓰셨다. 형 에서가 옛날의 원한을 잊지 못하고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살기등등하게 나를 찾아 왔을 때 하나님께서 미리 형 에서의 마음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려주셨다.’
야곱은 이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또 ‘내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잊지 아니하고 나를 먼저 찾으시고 챙겨주셨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다. 그런 하나님이 내가 만약 기도하면 오죽 응답을 잘 하시겠는가?’ 야곱에게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보다 무언가를 조금 잘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비슷비슷하고 별 차이가 없습니다.
신자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얼마나 굳센가? 그 하나님을 얼마나 믿는가?’ 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권세와 능력은 그것에 비례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얼마나 믿는가에 따라서 권세와 능력은 달라집니다.
야곱은 죽을 때가 되어서 알았습니다. 내 비록 내 아버지 이삭, 내 할아버지보다 못난 사람이지만 믿음만큼은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보다 더 자신 있다는 이것 때문에 야곱은 그렇게 당당하고 큰소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축복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자신 있게 나는 확실하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너무도 사랑하신다,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까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만약 믿는다면 여러분의 기도, 여러분의 딸 아들을 위해서 하는 모든 축복과 기도는 어떤 다른 사람보다 더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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