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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사람.. (사도행전 16:6~10)
    2019-04-11 09:54:05
    관리자
    조회수   884

    이런 사람..







    사도행전 16:6~10 





    바울이 선교 여행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동안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한동안 아시아에서의 선교를 마치고 본 교회인 안디옥 교회로 돌아가서 볼일을 다 보고 다시 선교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동안 아시아에서 성공적으로 선교를 했지만 아직 남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계속해서 아시아에서 선교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동안은 아시아에서 복음 선교, 복음 전도하는 것이 잘 되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출발하니 도무지 일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선교의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하는 일마다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당장 하나님께서 그러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러면 이곳에서는 그만하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시아를 떠나서 동쪽에 있는 부르기아로 갔습니다. 선교지를 이동했는데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일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성령님의 뜻을 잘못 알았다고 생각하고 더 동쪽인 갈라디아쪽으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도 또 일이 안 풀렸습니다. 바울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성령님께서 못가시게 하는 것이 틀림없는데 그렇다고 가야할 곳을 가르쳐 주시지도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제까지는 동쪽으로 갔지만 이제부터는 서쪽으로, 저 멀리 무시아까지 갔습니다. 거기서 복음을 전하는데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시아도 아니고, 동쪽도 아니고 더 동쪽도 아니고 서쪽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북쪽인가 하여 북쪽의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더니 이번에는 아예 성령님께서 가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바울은 그렇다면 갈 때까지 가보자고 생각하고 반대 방향 서쪽 땅 끝 드로아라는 항구까지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바울은 잠을 자다가 환상을 보게 됩니다. 저 멀리 유럽 마케도니아의 사람 한 사람이 안타깝게 빨리 와서 도와주십시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십시오.’ 라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즉각적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으로 가라고 하시는 것이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바울 일행은 이 계시를 보자마자 유럽으로 떠날 채비를 차립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아시아 지역에서만 전해지던 복음이 드디어 유럽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여기서 바울의 이 일을 두고 우리는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바울에게 이제부터는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이라고 진작 가르쳐주시지 않는가? 가는 길마다 길을 막지 마시고 아예 여기로 가라고 말씀해주시면 좋을 텐데 왜 그렇게 하시는가?’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간단하게 지명을 말하지만 이 길이 실제로는 대단히 먼 거리입니다. 아시아에서 브리기아로 갔다가 갈라디아로 갔습니다. 다시 또 서쪽에 있는 무시아로 갔다가 북쪽에 있는 비두니아로 갔다가 또 북쪽에 있는 드로아로 갔습니다. 가는 길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당시 교통편이라고는 나귀 정도가 있었을 테지만 비싸서 거의 발로 걸어 다녀야 했을 것입니다. 이리로 가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으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또 제대로 하는지 열심히 보고 계셨습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이렇게 길이 막히면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막히면 내가 복음 전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든지 혹은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중단하거나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멍청한 사람 같고 소위 믿음이 있다는 사람들 눈에 보기에는 바울이 하나님 뜻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 같습니다. 깊이 생각하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그만하라고 하신 것을 알 텐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바보처럼 가고 또 가는 것을 보니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도 아니하고 하나님 뜻도 모르는 사람 같다고 오해될 정도입니다. 몇 번이나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그렇게 길을 막았으면 충분히 가지 말라는 뜻으로 알았을 텐데 왜 그랬을까요?



    바울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뜻에는 절대적인 뜻이 있고 상대적인 뜻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은 말 그대로 절대적입니다. 그것은 변할 수가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혹은 내 형편에 따라서 처지에 따라서 또는 일이 잘되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전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복음전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내 처지가 그럴 처지가 아니고 길이 막힌다고 할지라도 포기되어서도 중단되어서도 안 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입니다.



    복음전하는 일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도 없고 저해될 수 없고 방해될 수도 없다, 어떤 것도 변명과 핑계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끝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전해져야한다는 것이 절대적인 하나님 뜻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덜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진짜 똑똑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습니다. 하나님도 바울의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을 알았기 때문에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갔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보고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바울에게는 여러 가지 병이 많았습니다. 작은 키에 머리는 벗겨졌고 눈 한쪽은 찌부러졌습니다. 그리고 눈썹은 붙었습니다. 코는 큰 매부리코라서 과장하면 코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볼 만한 데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정도가 되니 시집올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거기다 병까지 있었습니다. 아마 거의 틀림없이 간질병인 것 같습니다. 설교하다 발작을 하면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입에서 거품이 나오면서 손이 떨리고 발이 떨리니 은혜가 되겠습니까?



    그런 바울이기에, 길이 그렇게 막히는데 쉬고 싶다는 마음도 많았을 것입니다. 선교길이 그렇게 막히면 하나님께서 좀 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교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뜻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해야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라는 대명제로 삼아놓고 다른 것만 보았습니다.



    바울에게는 절대 명제, 어떤 일이 있어도 복음은 전해야한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는 좀 쉬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고통을 당하면서도 얼굴을 찌푸리고 살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전해야한다, 그런데 성령님이 막으신다, 그렇다면 무슨 뜻인가? 그러면 여기가 아니고 저기인가?’ 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저렇게 찾아다녔습니다.



    이런 바울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이 길이 막히면 저 길로, 저 길이 막히면 또 다른 길로 가는 바울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힘든 인생을 사는 사람 같지만 바울은 힘든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길을 막기만 하실 것이 아니라 좀 가르쳐주셔야하지 않는가?’ 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보여주실 때까지 쉬면서 기다리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로 바울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인 복음은 땅에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에 있어서만은 일이 중단될 수 없고 쉴 수 없다는 것을 명제로 삼아놓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다닌 것입니다. 무언가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시고 귀하게 여기고 위대하게 만들 사람은 무언가 차원이 다릅니다.





    이런 바울에게 드디어 하나님께서 유럽 선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세상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바울의 이름을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만약에 바울이 그때 선교를 이런 저런 핑계대고 중단했다면 바울의 위대한 여정은 그것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은 어떤 경우에도 중단될 수 없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그냥 그 길로 나갔습니다. 이런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위대한 뜻을 이루실 수 있었고, 하나님은 바울을 위대한 사람으로 세울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를 복음화 시키는 주역으로 바울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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