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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를 온전히 이루라 (레위기 7:15-18)
    2024-10-08 11:57:13
    관리자
    조회수   58

     

    감사를 온전히 이루라 (7:15-18)

     

     

     

    우리는 10월 한 달 동안 하나님께서 주셨던 감사를 기억하고 또 그 감사를 우리가 발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되새기 고 드리면서, 감사에도 완성이 있고 마 침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감사는 무엇일까? 나와 하나님 둘 사이 에서만 주고 받는 그 감사가 정말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감사인 가? 말씀으로 깊이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진짜 감사, 감사에는 완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감사가 나 개인이나 우리의 가족 에만 국한되지 아니하고 누군가에게로 흘러들어가서 그 사람에게서도 감사가 흘러나오기 시작되는 것, 이것이 감사의 완성이자 진짜 감사입니다.

     

    감사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감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일상에 주셨던 그 수많은 감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에 많은 불평과 불만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삶은 정말로 조금씩 변화가 됩니다.

    두 번째 단계는 그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누군가에게 그 감사를 흘려보내서 감사 거리를 그에게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감사의 단계입니다.

     

    두 번째를 보자면 감사를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우리는 참 서툽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음에 담아두고 말은 잘 하지 않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데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모릅니다. 고맙다는 표현이든지, 미안하다 라는 표현이든지 내가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할 때 상대방은 그때서야 들을 수 있고 또 무엇보다 오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고 사람에게든 하나님께든 감사를 표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감사를 표현하다 보면 더욱더 큰 감사가 우리 삶에 돌아오게 됩니다. 누가복음 17장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10명의 나 병 환자를 다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만 다시금 예수님께 돌 아와 감사를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그 한 사람을 보시고 뭐 하러 왔냐고 다 아는데 그냥 돌아 가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되물으십니다. ‘나머지 9명은 어디 있 느냐? ’ 감사를 받았으면 감사를 표현해야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왜 너 혼자 왔느냐는 말씀이십니다. 그에게 물으시면서 그렇게 감사를 표현 한 사람에게는 준비하셨던 더욱더 큰 선물, 바로 영생의 구원까지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누구에게 감사를 잘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더 큰 감사를 우리 삶에 불러올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진정한 감사의 완성은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감사를 흘려보내서 그 사람의 삶에서도 감사의 기도가, 감사의 제목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 진짜 감사의 완성입 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다섯 가지의 제사가 있었 습니다(7). 번제, 소제, 속건제, 속죄제 이 네 가지 제사와 함께, 특 별한 제사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은 화목제입니다.

    이 화목제는 내 삶에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목을 가 지고 드리는 제사입니다. 병이 나았거나 이웃과 화해했거나 어떠한 큰 문 제가 해결되었거나 먼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집에 돌아왔을 때, 아니면 어

    떤 일을 성공적으로 잘 끝마쳤을 때 뿐만아니라 내 속에 있는 어떠한 죄를 깊이 깨달았을 때, 이렇게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께서 주셨던 그 감사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는 그 제사를 화목제 또는 감사제라고 불렸 었습니다.

    그런데 이 감사제에는 이 다른 제사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습 니다. 먼저 첫 번째 특징은, 다른 제사는 재물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얼마 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부자는 소를 가지고 드릴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감사의 제물만큼은 번제의 제물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비둘기는 안 됩니다. 소 아 니면 양 아니면 염소, 이렇게 재물이 정해져 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다른 제사는 전부 다 불살라 하나님께 드리거나 혹은 그 일부를 제사장이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화목제만큼은 모든 제 사가 끝난 다음에 그 고기를 나와 우리 이웃들이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제사였었습니다.

    마지막 특징이 있습니다. 다른 제사는 그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하나 님께서 기뻐 받으셨는지 받지 않으셨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런데 이 감사의 제사는 내 감사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이 되었는지 안 되 었는지를 삼일이 지나서야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 제물을 삼일까지 남기지 않고 전부 다 먹으면 하나님께서 그 예배는 받으신 것이고 만약에 그 음식 이 우리 집 안에 여전히 남아 있으면 하나님께서 기뻐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아무리 제사를 잘 드려도 그 제사의 응답은 삼일째 음식이 남느냐 남기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광야의 기후, 그 사막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음식을 오래 보관 할 수가 없습니다.

    소 한 마리를 한 가족이 하루 이틀에 먹을 수 있을까요? 못 먹습니다. 양 한 마리도 벅찹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그 음식을 부지런히 이웃들과 나눠야 합니다. 욕심을 부릴 새가 없습니다. 삼일째 음식이 남겨 지게 되면 제사가 열납되지 않기 때문에 그때는 욕심을 버리고 부지런히 이 웃들과 나눕니다.

    어떤 이웃들과 나눌까요? 가난한 사람이든지 부한 사람이든지 음식을 다 나누어 줍니다. 혹은 나와 관계가 서운해졌던 사람이든지 아니면 나와 좀 다투었던 사람이든지 가릴 것 없이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줍니다. 하나 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면서 그렇게 음식을 누구나 할 것 없이 골고루 나 눌 때, 이웃들 사이에서는 아름다운 화해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 감사의 제사, 참 따뜻합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한 사람이 드렸습니 다만 그런데 한 사람이 자기만의 감사로 그치지 않고 그 고기를 이웃과 함께 나눔으로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로 말미암아 함께 하나님께 감사 를 드리게 되는 것, 이것이 감사제의 진짜 방법, 온전한 감사의 모습 이었습 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 십니다.

     

    올 한 해 하나님께 참 감사한 일이 많이 있으셨죠? 또 하나님께 감 사하다고 고백도 하시고 표현도 하셨죠? 그런데 여러분의 감사는 아직 열 납되지 않았습니다. 구약에 그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사람이 삼일째 음식 을 남기지 않고 다 나누어 주었을 때 그때서야 하나님께서 그 감사의 예배 를 받으셨던 것처럼 우리들의 그 감사의 기도, 감사의 예배, 감사의 마음은 아직 열납되지 않았습니다. 언제 열납이 될까요? 내가 받았던 그 감사를 이 웃에게 흘려보낼 때 그래서 그 이웃도 함께 감사하게 되는 마음을 품게 되 었을 때 그때 우리의 감사 예배, 감사의 기도, 감사의 제사가 열납되는 것 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물질도 좋습니다. 받은 것이 많다면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음식도 좋습니다. 넘치면 썩혀 버리기 전에 이웃에게 함께 맛있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양보하는 것도 나누는 것입니다. 배려하는 것도 나누는 것이고 용서하는 것도 나누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게 많다면 그 것이 물질이 되었든 마음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지 이웃에게 흘려보내서 나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도 함께 감사하게 될 때, 그게 진정한 감 사의 완성이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흘러야 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중요한 복의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복은 흐르는 곳으로 흘 러갑니다. 막힌 사람에게는 흘러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흘려보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더욱더 풍성한 감사로 마르지 않도록 채워 주십니다.

     

    성경에 다윗만큼 하나님께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 있을까요? 다윗을 묵상할 때마다 다윗이 그냥 복을 받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다윗을 묵상할 때마다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항 상 흘려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그의 부하 600명과 함께 어느 날 자신의 가족들을 구하러 갑 니다. 그런데 이 600명의 군사들이 오랜 여정 때문에 지쳐 있었습니다. 200명의 사람이 브솔 시냇가에서 좀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 니다. 나머지 400명이 열심히 추격하여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의 가족들 을 구하고 또 전리품을 건져서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400명의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다윗이여, 저기 200명의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가정만 돌려주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 전리품은 더 많이 수거한 우리만 나누어 가집시다.’

    그 말에 다윗이 이렇게 답을 합니다. ‘여러분 아닙니다. 이 전쟁은 우리 가 도저히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었고 우리는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까닭은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셨고 하나님의 은혜 이기 때문에 이 은혜를 우리만 가질 수 없습니다. 200명의 사람들에게 도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다윗은 자격 없는 자신의 인생을 품으셨던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그리하여 자격이 없는 그 200명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 보 내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시고 복 주셨던 이유 입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 받은 것을 누군가에게로 끊임없이 흘려보 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감사를 흘려보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세상 의 관점에서는 약한 자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움켜진 사람이 부자일까요 베푸는 사람이 부자일까요? 베푸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일까요 용서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일까요? 용서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사 람들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욕심의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욕 심이 가득한 사람은 움켜지게 됩니다. 더 가지려고, 더 강해지려고 모든 것 을 움켜집니다. 그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 권력의 힘까지 더해지면 정말 끔 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권력을 가지고 더욱더 욕심을 부립니다. 착취 합니다. 갑질을 합니다. 빼앗고 자기 배만 채웁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 욕 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더욱더 강해지고자 하지만 결국 그들 이 만든 세상은 약한 세상, 악한 세상을 만들어 갈 뿐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을 믿을 때 죄와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겠다며 결단하고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

    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며 움켜지지 아니하고 흘려보내는 사람들, 물질 보다 더 좋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이 옳음을 고백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인생의 삶이 60, 70, 80, 90세에서 끝이 나겠지만 그러나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나중에는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 삶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고 평가받는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움켜쥐지 않습니다. 우리는 흘려보내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을 강한 자라고 표현을 하십니다.

     

    로마서 1512절 말씀에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구약의 시편학자이자 한신대 초대총장을 지내셨던 김정준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결핵 3기를 진단받습니다. 이 당시에 결핵은 폐병 이라 불렸고 이 불치의 병으로 그렇게 여겨졌었습니다. 목사님은 젊은 나이 에 폐병에 걸렸으니 얼마나 그 삶이 억울했겠습니까? 두고 있는 아내 그리 고 두 아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정말 간절히 살고 싶었습니다. 이제 마산 요양소에 내려가서 요양을 하는데 목사님은 하나님께 너무나 분하고 원망 스러웠었습니다. 성경 책 한 줄도 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침상에 누워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시 간이 한 달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목사님의 병실에 나비 한 마리가 들어왔었습니다. 이 나비가 밖으로 날아가고 싶은데 이 유리창에 막혀서 자꾸 퍼드득 퍼드득 떨어지고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덧 날개가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참 불쌍한 마음에 그 나비를 잡아서 밖으로 놓아주고자 그 나비 를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나비가 잡힐 리가 없지요. 나비가 자꾸 이리저리 도망을 갑니다. 그럴수록 날개는 더욱더 지치고 찢겨지게 되었습니다. 목 사님이 이 나비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비야 내가 너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너를 살려주려고 하는 것이야 너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야.’

     

    그때 목사님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큰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바로 그 나비의 모습이 목사님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악착같이 살고자 바둥바둥 거리며 날개 짓하는 그 나비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아 보였습니다. 목사님이 깨달았습니다. ‘내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야 살 수 있구나. 내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지 않고 살고자 바둥바둥거리니 내 몸 만 더욱더 상하게 되었구나. 하나님께 붙잡혀야겠구나.’ 그렇게 목사님은 회개의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붙잡히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 었습니다.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이 인생 가지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한 달 을 그냥 누워서 죽기만을 기다리자니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 내 남은 한 달의 삶으로 여기 병실에 있는 사람들을 섬겨보자목사님은 그래도 화장실을 두 발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었지만 거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각혈을 해도 그 피를 치울 수 없는 사람 들, 몸도 스스로 씻을 수 없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목사님은 그들의 피를 닦아주고 몸도 씻겨주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흘려보낼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3년 만에 목사님은 깨끗하게 그 병에서 낫게 됩니다. 그리고 퇴원하여서 시편 학자 로서 그 다음에 신학대학 교수로서 그렇게 살다가 아름답게 인생을 마치 셨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 성도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한 달밖에 남아있지 않은 그 삶에도 흘려보낼 것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건강도 있고, 우 리의 생명은 어쩌면 그보다 더 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수많은 은혜를 받고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이웃들에게, 친구들에게, 그동안 마음을 열지 못했던 그 사람에게 얼마든 지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흘려 보내고, 용서하고, 베풀고, 그렇게 살 때 그때 비로소 우리의 감사의 예배 가 완성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감사는 아직 온전히 열납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미 완성입니다. 언제 완성이 될까요? 감사할 것이 없는 그 사람이 나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기쁜 일이 없는 그 사람이 나 때문에 기 뻐할 때 그때 우리가 하나님께 받았던 그 감사가 진짜로 완성되어지고 하 나님께 감사의 제사로 올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의 계절입니다. 감사의 계절인 이 때, 하나님께서 주셨던 그 많은 것 들을 생각하며 어떻 게 감사를 흘려보낼 수 있을지, 누구에게 흘려보낼 수 있을지 그렇게 고민하며 온전한 감사를 이루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셨으 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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