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초대
고난의 때에 구해야 할 지혜
야고보서 1:1-8
1930년대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늑대가 사라졌습니다. 늑대 가 사슴들과 가축들을 해치자 주변 농부들이 계속해서 잡아들였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늑대가 사라지면 살기 좋아 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늑대가 사라지자 사슴들은 왕성하게 번식했고 풀 과 나무를 마구 먹어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들이 말라죽자 비가오면 토양이 쓸려 내려 갔고 공원은 점점 황폐해져 갔습니다. 결국 1995년 미 국 정부는 캐나다에서 다시 늑대를 들여와 풀어주었습니다. 그러자 공원 의 모습도 점차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당장의 유익만을 생각하여 그 고통만 제거하면 좋을거라 생 각 하지만, 때론 그런 고통도 필요하고, 유익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 삶에
불편한 통증이라 하더라도, 그 목적이 나에게 선하고 유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든지, 고통도 잘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가 바 로 그런 서신입니다. 야고보서의 가장 큰 주제는 ‘시험’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은 야고보서를 통해 성도의 고난이 주는 유익이 무엇인지? 그리고 또한 그 고난을 어떻게 지나야 하는지? 가르쳐 주심으로‘시험’과‘고난’ 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을 바꿔주십니다.
먼저 야고보서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런데 왜 예루살렘에 모여있던 이스라엘 성도들은 흩어지게 되었을까요? 바로 그들에게 여러가지 고난과 시험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부흥하던 초대 교회는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게 되었고, 뒤를 이어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도 순교하게 됩니다. 그러는 상황가운데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성도들에게는 회의감이 찾아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박해가 두려워 변절하였고, 어떤 이는 신앙을 감추며 살았고,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아갔습니다. 한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이웃들과 나누며, 함께 모여 뜨겁게 기도하던 성도들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로 변해버렸습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요? 바로 삶에 닥친 고난이 해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이해되지 않으니 신앙이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이 고난의 의미와, 성도는 고난을 어떻게 통과해야 하는지 소개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성도의 삶에 고난은 항상 있고,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신앙이 좋아 보이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부자도, 가난한자도,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어려운 시험들을 만납니다. 그때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신앙이 흔들리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도 ‘성장통’과 같이 우리에게 유익이 있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게 되면, 비록 아프고 힘들어도 잘 이기고,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럼 신자들은 어떻게 고난을 마주해야할까요?
하나님은 고난의 때에는 근심과 걱정이 아닌 기쁨으로 고난을 대하라고 하십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사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시험은 전혀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시험은 질병, 사고, 실직, 가난, 다툼 등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찾아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시험을 피하고 싶고, 싫어하는게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험을 당할 때 기쁘게 여기라”고 하십니다. 이는 ‘시험을 즐기라’는 뜻이 아니라 ‘시험에 대한 인식을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꾸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시험을 통해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련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연단’이라는 말로, 용광로에서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수해지는 과정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 우리 믿음에 불순물들이 제거된다고 하십니다.
성도의 믿음은 처음부터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믿음이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각자는 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고, 또한 말씀대로 살고 싶어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 때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지만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들은 그냥 제거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삶에 닥치는 여러 가지 연단과 사건을 통해 제거됩니다.
병으로 위중한 분들이나 병상에 오래 누워있든 분들이나, 이혼의 위기나, 극심한 인간관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기도제목과,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기도제목은 전혀 다릅니다. 그런 죽음의 위기 앞에 서있다 보면 무엇이 정말 중요하고, 무엇이 진짜 하나님의 복인지 구분이 됩니다. 마치 용광로 속에서 불순물들이 다 녹아버리듯, 시험을 통해서 믿음의 불순물들이 제거되고 점점 순결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런 연단의 과정을 겪지 않으면, 겉으로는 좋은 성도인 것처럼 보여도, 그러나 항상 중요한 순간에는 자신의 정욕과 탐심을 따라 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시련’이라는 말에는 ‘검증하다’, ‘드러내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시련은 우리의 믿음을 검증하고, 믿음의 진위 여부를 밝히는 ‘TEST’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믿음은 밖으로 꺼내지기 까지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추상적입니다. 그런데 그 무형의 믿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눈으로 확인될 때가 있는데, 바로 시험의 순간입니다. 시험의 때가 되면 우리 믿음이 실체가 드러납니다. 평상시에는 다 믿음이 있어 보이고, 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처럼 보여도, 그게 진짜 믿음인지 가짜인지 바로 시험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겉으로 볼 때는 알곡과 가라지가 다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바람에 날려보는 것입니다. 어릴 적에 동네어른들이 키질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키 위에 가라지와 알곡을 가득 넣어두고 공중에 던져보면 속이 빈 가라지는 바람에 날려가지만, 그러나 속이 찬 알곡은 던지면 던질수록 더욱더 안쪽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신앙의 겉모양만 있는 성도는 공중에 던져지면 바람과 함께 날려가지만, 그러나 진짜 신앙인은 공중에 던져지면 던져질수록 오히려 더욱더 하나님의 품을 파고듭니다. 그래서 때론 하나님도 우리 믿음의 진위를 검증하시위해 우리를 공중에 던져보십니다. 이 시험은 우리믿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시험이 없다고 무조건 좋아할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마지막 날에 하나님앞에서 버림받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자신있게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롯하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도 행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예수님께 용납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가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속고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시험을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나야할 연단의 과정은 힘들다고 피하고, 항상 넓은 길, 쉬운 길로만 다녔기에 자신의 믿음을 정직하게 돌아볼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험의 때를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시험을 통하여 내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고, 이 시험을 통해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자로 설수 있게 되기에, 시험은 마냥 슬픈 것이 아니라 기뻐할 이유도 있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시험의 때에 성도가 취해야할 신앙의 태도는 무엇일까요?
먼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4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표준새번역에는 이렇게 번역합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가 시험을 당한다고 해서 모든 시험이 항상 유익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시험이 나에게 유익함이 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고 빚어 가시는데,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충분한 인내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보다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때 까지 까지 인내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수백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계획이 있으셨지만, 그러나 젊을 때의 모세는 분노로 사람을 쳐 죽일 만큼 불같은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단 한사람도 품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계획이 있었지만, 모세는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40년간 모세를 광야에서 연단시키십니다. 40년이 지난 후에, 모세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뀝니다. 민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한 사람도 품지 못했던 모세는 그 긴 시간동안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온유한 사람이 되어, 수많은 백성들을 품는 지도자가 됩니다.
모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그렇게 빚어 가십니다. 시험과 고난은 아무런 맥락없이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대장장이는 아무렇게나 두드리지 않습니다. 만들고자하는 분명한 모양을 가지고 두드립니다. 설령 내 실수로 인한 고난이라도, 뜻밖의 고난이라도 그 고난가운데는 우리를 빚어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같은 시련, 같은 문제라 할지라도, 어떤 이에게는 교만을, 어떤 이에게는 탐욕을, 어떤 이에게는 영생을 주시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다 다릅니다. 그 하나님의 결실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인내하는 것입니다.
눅 8: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고, 좋은 말씀을 들어도, 인내 없이는 열매를 결실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빚어 가시도록, 나에게 필요한 열매를 맺으시도록 그 과정을 충분히 인내해야합니다.
또 하나 고난의 때에 성도가 구할 것은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이 빨리지나가기’를 구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고난의 때에 오히려 지혜를 구하라고 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는 고난을 받을 때, 늘 나에게 무언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만 채워지면 어려움을 이길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주로 돈, 능력, 건강과 같은 것들을 구합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에 우리가 정말 구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십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고난은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 가시는 과정인데, 그 의미를 알지 못한체 단지 고난이 빨리 끝나기만 바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뿐더러, 배우지 못한 고난은 또 다시 되풀이 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무조건 버티라’고 하시지도 않습니다. 무조건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그 고난속에서 우리를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고전 10:13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가 당한 고난들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당하는 시험 중에는 항상 피할 길이 있다고 하십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어떻게 순종해야하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구할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 그 고난을 이겨내는 길이 하나님의 지혜속에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속에서 우리가 무기력하게 가만히 버티고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능력과 지혜가 부족할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이겨내라고 말씀하십니다. 똑같은 햇빛을 받아도 생명이 있는 과일은 점점 더 무르익어가지만, 땅에 떨어진 과일은 갈수록 썩어져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도움 없이 지니가는 시험은 상처와 피해만 남길 뿐입니다. 그래서 고난 중에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지혜이고, 하나님은 지혜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지혜를 구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지혜가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구하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늦었다’고 꾸짖지도 않으십니다. / 우리 생각에 늦어다고 생각되어도 하나님이 지혜는 모든 순간에 길을 내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혜를 주실 때는 간신히 그 고난을 이겨낼 정도가 아니라, 고난을 벗어나고도 남을 정도로 후하고 넉넉하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조건이 있다고 하십니다. 6절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그리고 7-8절입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구할 때는 의심하지 말고 구해야하며, 믿음이 없는 기도는 응답받을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란 ‘두 마음을 품은 기도’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기도란, 파도가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요동하듯이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상황이 어려우면 기도하다가도, 조금 나아지는 듯 보이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기도란 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하는 기도이며, 하나님과 세상이라는 두 주인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는 기회주의적인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응답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후히 주시는 분이시지만, 그러나 두 마음을 품은 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은 우리아빠는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빠는 돈도 엄청 많고, 힘도 엄청 세고, 다 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눈에 세상에서 제일 크고 강한 사람은 우리 아빠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빠가 옆에 있으면 무서울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와 같은 믿음으로 간구하라고 하시며,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면 무서울게 없는 사람들, 하나님 한분이면 충분한 사람들, 하나님이 없으면 살수 없는 마음으로 믿고, 구할 때 하나님은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한다고 당장에 그 고난을 끝내주시겠다고는 약속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그 고난을 통과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빚어가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있습니다. 고난의 순간, 시험이 찾아올 때 이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며, 고난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기도로써 지혜를 구하며, 더욱더 단단한 믿음의 사람들로 성장케 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러 가지 상황속에서 이 지혜를 선택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지혜가 아닌 생명이 되는 이 하나님의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고난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우리는 이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지혜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죄수들을 처형하는 사형틀입니다. 당시 권력자들과, 배운자들과, 종교인들이 보기에는 십자가는 미련하 것이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신다. 나를 단련하신 후 순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내 길을 내가 모른다. 하나님이 아신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도록 하라.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는 땅콩박사로도 유명합니다. 1900년대 미국남부는 목화재배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목화를 수년간 재배하다보면 땅이 기력을 잃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남부 경제도 휘청였습니다. 그 때 카버 박사는 질소가 없어진 땅에 땅콩을 심으면 땅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거의 모든 남부의 농가들은 땅콩을 재배했습니다. 땅콩으로 인해 땅의 기력은 회복되었지만, 또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넘치는 땅콩을 처분할 길이 없었습니다. 땅콩 때문에 농사를 망칠지경이 되었고, 땅콩이 썩을 정도로 남아돌게 되자, 이번에 사람들이 커버박사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농가가 고통받게 되자 카버박사는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괴로운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어느날 답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무엇하시려고 이 우주를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의 작은 소견으로 알려고 하지 말고 너에게 알맞은 것을 물어보아라’ / 이번에 카버박사는 “하나님, 사람은 무엇에 쓰시려고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의 대답은 동일했습니다. “쓸데 없는 것을 묻지 말고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물어보아라”
카버박사는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하나님, 무엇을 하시려고 땅콩을 심게 하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옳지, 됐다. 바로 그것이 네가 알아내야 할 일이다. 너는 땅콩을 한 줌 들고 실험실에 가서 연구를 계속해라."
그 후로 그는 땅콩을 가지고 밤낮으로 실험실에서 연구할 결과 땅콩버터, 땅콩 구두약, 땅콩 크림, 땅콩 식용유 등 무려 105가지의 식용품과 200가지의 실용품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 모든 기술로 남부 경제가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모든 제품에 대한 로열티는 단 한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의 로열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종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하심이라”
시험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의지하는지 드러내주며, 우리의 믿음의 대상을 알게하려는 도구입니다. 그리하여 시험을 통해 우리를 진정한 복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신 8:1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의 궁극적인 시험의 목적은 우리 인생을 낮추시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진짜 복을 주시려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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