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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감사하는 삶을 위하여...(시편 37:23-29)
    2023-12-02 06:37:1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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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하는 삶을 위하여...

     

    시편 37:23-29절 

     

    한 해를 감사로 마무리하는 일은 정말 복된 일입니다. 한해 여러 가지 어려움과 힘든 일 들도 많았지만, 그러나 그 모든 일을 고생과 불평이 아닌 감사로 끝마칠 수 있다는 것은 소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고, 소망이 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뜻이기에 하나님 올 한 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정말 복된 사람이자 참된 신앙인입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감사는 세상의 감사와 다릅니다. 교회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전부 부자가 되거나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이 좋다고 모두 건강하고, 출세하고, 시험에 합격하는 등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도 않습니다. 기독교는 이런 기복신앙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우리 자신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믿을수록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갈수록 내가보입니다. 화려한 것들로 삶을 치장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외롭고 초라한 모습을 보게 하시고, 늘 무엇인가 열심히 좇아 살지만 결국에는 상처로 가득한 자신을 보게 하십니다. 가족들과 사람들 앞에서는 강한척하지만, 그러나 한없이 연약하고 실수투성이인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없는 나의 부끄러운 죄를 보게 하십니다. 그 죄악대로 내 삶을 대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아주시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정말 제대로 믿는 사람은 항상 겸손합니다. 그리고 감사하게 됩니다. 부족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감사의 조건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해를 되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우리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과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무엇이 되었든지 감사할 것뿐입니다. 이러한 감사로 한 해를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한해를 돌아보며 감사하고자 할 때 우리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감사는 어떻게 드릴 수 있는가?입니다.

     

    먼저 온전한 감사를 위한 첫 번째는, 감사는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감사를 드릴 때 대부분 남과의 비교로부터 시작합니다. 남보다 좋은 차, 좋은 집, 자녀들의 진로, 취직, 건강과 같은 것들을 남과 비교하며 감사합니다. “남들은 떨어졌는데 그 어렵다는 시험에 합격시켜주시니 감사합니다.”, 혹은 남들은 어려운데 우리 가정은 풍족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와 같은 내용들입니다. 언뜻 보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남들보다 내 상황이 낫기 때문에 혹은, 남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어서 드리는 감사는 온전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비교로부터 오는 감사는 그 속에는 남보다 내가 더 낫다라는 자랑과 상대방의 어려움과 아픔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심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굳이 남과 비교하며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병들 때가 있고,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힘든 시기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뭐라 감사할까요? 그때도 나보다 더 아픈 사람, 더 상황이 안 좋은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보다는 나으니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하시겠습니까? 감사는 그렇게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과 비교로 시작되는 감사는 나중에는 불평할 수밖에 없고, 만족도 없습니다.

     

     

    그럼 온전한 감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바리새인과 세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옵니다. 먼저 바리새인이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간음도 불의도 토색한 일도 없습니다. 또한 저는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세리보다 나은 것을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를 물리치셨습니다. 반면에 옆에서 기도하던 세리의 기도가 더 옳다고 인정해주시는데, 세리는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세리는 남과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보다 더 악한 죄인도 있었을 텐데 그들과 비교하며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서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는 죄인입니다.’하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며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기도가 옳다고, 그 세리가 옳다고 인정해주셨습니다. 그의 기도가 인정받았던 까닭은 그의 기도속에는 남의 아픔과 비교하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를 드릴 때는 하나님과 나’,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다른 사람을 끼워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남과 비교로부터 감사하기 시작하면 그 감사는 언제 바뀌고 변화될지 모릅니다.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 더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을 보면 서운해지고, 감사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감사는 남과 비교에서 오는게 아니라, 자신과 하나님, 이 둘 사이의 관계에서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그리고 내 부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가 드려져야 합니다.

     

     

    어릴 때 주일학교 찬양 중에 참 좋아하던 찬양이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도 감사 할 수 없어요.

    가진 것이 없어도 감사 할 수 있어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오직 참 행복 참 기쁨이죠.

    하나님 함께하는 시간이 내겐 가장 큰 행복이지요.

    가진 것 없어도 감사할 수 있어요 하나님과 함께라면

     

    멜로디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가사의 고백이 참 좋았습니다. 감사는 가지고 있는 것의 많고, 적음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충분히 감사할 수 있다는 고백이 참 좋았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유명한 감사의 고백도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감사의 조건으로 주셨지만, 그러나 그중에 최고의 선물은 바로 하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항상 변하지 않는 감사의 조건이자 이유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장 큰 감사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민족과 나라를 다스리시는 그 주님이, 모든 소산물과 모든 것들을 때에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 주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절묘한 방법으로 가장 적합한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시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시며 아버지 되어줍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심을 인식했을 때 마음속에 진정한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그 평안함과 감사는 이 세상 아무것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물질이나, 건강이나 어떠한 환경의 어려움이 찾아 와도 그 감사를 빼앗아 갈 수도 없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감사는 하나님 한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남과 비교하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할 수 없지만, 하나님 앞에 서면, 아무리 적게 가진 사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사가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온전한 감사는 고난의 때에도 드려질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기복신앙을 추구하지 않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 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좋은 것들과 선한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과 세상에서 말하는 복은 다른 차원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기독교가 우스운 모양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제 어릴 때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유명한 기도원이었지만 지금은 이단으로 판명된 기도원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원에서 정말 사람들이 놀랍게 고침받고 회복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르르 모이기 시작했고 기도원은 점점 장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새 돈 벌기 위한 홍보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기도원에서 나오는 수돗물을 능력의 생수라고 하여 조그마한 5L 통에 담아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마치 그 물이 만병통치약 인양 피부가 가렵거나 상처가 있다면 그 물을 바르라고 했습니다. 또한 백원짜리 동전 뒷면에 형통이라는 스티커를 붙여 몸에 지니거나 서랍에 넣어두면 집안이 형통해진다하며 부적처럼 그 동전을 팔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입니다. 왜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게 된 것일까요? 복에 대한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세상의 복을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세상에서 생각하는 복과는 다릅니다. 먼저 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복이란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복입니다. 돈이 많은 것도 복이고, 좋은 직장도 복이고, 명예와 권력도 복입니다. 그런 것들이 있으면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에게 복은 무엇일까요? 마찬가지로 세상의 사람들이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복이라면, 성도에게 있어서 복의 개념은 하나님의 나라를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바로 성도의 입니다. 그런 면에서 돈은 성도에게 복일 수도 있지만 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공이 복일 수도 있지만 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업이 잘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다가 감사하게도 사업이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업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떠난다면, 돈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복이 아닙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갔는데, 직장이 바쁘다는 이유로 신앙을 떠난다면 아무리 좋은 직장도 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성도로서 하나님 나라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복인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복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난에 대해서도 같은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고난은 실패입니다. 시험에 떨어지고, 가정이 어려워지고,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질 때 실패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조건 고난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비록 그 모습이 고난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가 되고, 더 겸손해지고, 영적으로 성장의 기회가 된다면 그 고난도 얼마든지 하나님 보시기에는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잘 알고 지내던 학교 후배가 청소를 하다 그만 실수로 5층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사고를 당하던 그 날, 그의 아버지는 큰 수술을 앞두고 계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수술도 미루시고 아들의 모든 장례 절차를 마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문하러 온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계실거야. 분명히 우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뜻이 계실거야. 그러니 믿어야지...” 이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말이 마치 거짓말처럼 들렸습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지? 슬픔이 너무 크실텐데...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을텐데... 어떻게 그렇게 마음을 지키실 수가 있지? 물론 그 아버지의 마음은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고통의 무게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아버지는 하나님께 모든 결과를 내려놓았습니다.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아픔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 상황에도 하나님을 꼭 붙들고 계신 것이지요. 아니 반대로, 하나님께서 그 아버지를 꼭 붙들어주고 계셨습니다. 이 아버지의 모습에서 욥을 보았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그리고 그 아버지로 인하여 여러사람들이 오히려 위로를 받고 몇몇 친척들과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아버지는 고난을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복의 논리를 벗어나서 이 기가 막힌 하나님의 논리 속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남들은 고난을 다 실패라고 부르는데 하나님의 논리로는 고난도 복이 될 수 있다 하니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좋아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이 복이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고난은 내가 누구인지를 밝혀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의 때에 우리는 잠시 하나님과 멀어지고 낙심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붙드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는 성도, 오히려 고난을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생각하는 성도가 진짜 복된 성도이고,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꼭 붙들어주십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지금은 원망과 불평밖에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 고난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끌어 간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복입니다. 아프고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복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붙드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감사하기 어려운 순간마다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으로 인해 삶의 모든 순간마다 감사가 마르지 않으며, 저무는 올 한 해를 감사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그런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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