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에스라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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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하신 말씀의 의미
사도행전 1:3~14
부활 후 40일간 이 땅에 계셨던 주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떠나시면 언제 다시 오실지 모릅니다. 이런 이별 때에 무슨 말씀을 하셨어야 했을지 생각해봅니다. ‘너희들이 나 대신 열심히 전도하라’는 부탁을 하셨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제자를 너희 열하나밖에 남겨두지 못했지만 너희들은 제자 양육에 모든 힘을 기울이라는 말씀도 하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혹은 ’내가 그렇게 당했으니 너희들이라고 가만히 두겠느냐? 어떻게 하든 간에 너희들만은 살아남아서 내가 부탁한 일들은 제대로 해야 한다‘는 부탁을 하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분부를 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4)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시의 상황을 모르시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은 흉흉합니다. 예수님을 처치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살기가 등등합니다. 이런 위기감 때문에 제자들은 모일 때에도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모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아시는 예수님이시므로 떠나라, 피하라고 말씀하실 것 같은데 도리어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성령님입니다.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4-5)
그렇다면 성령님이 오시기만 하면 지금 제자들에게 당면한 모든 문제들이 해결 될까요?
성경은 아주 자신 있게 말씀하십니다. ‘그렇다!’ ‘해결된다!’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이 8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라미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크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성령님이 오시면 권능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권능이란 자연을 초월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성과 논리를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능력 이것이 권능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그 말씀은 성령이 임하시면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시면 달라집니다. 겁나는 것이 없게 됩니다. 모든 위기에서 보호받습니다. 놀라운 능력으로 함께 하십니다. 믿기 어려운 지혜를 주십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말까지 할 수 있게 되었나?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이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시 제자들에게 있어서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의 능력 재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제자들이 온 유대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서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확인할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되라’는 명령이 아니라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하고 연결됩니다. 땅끝까지 복음 전하는 것,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너희들의 힘으로, 너희들의 재주로, 너희들의 말솜씨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너희들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도, 재주가 뛰어나지 못해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이라도 성령님께서 충분히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땅끝까지 이르러서 증인이 되게 해주실 것이라는 말씀이 바로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성령님 오시기를 사모하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 오시기를 원하는 사람은 성령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사모하지 않는 곳에 성령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은 오십니다. 분명한 것은 성령님을 사모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1-13)
세 번째 성령님이 오시기를 기다릴 때, 그냥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형태로 대답하실지 모릅니다. 두 눈 똑똑히 뜨고 기다려야 합니다. 시선을 하나님께 집중시키는 것, 마음을 전부 다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쳐다보면 하나님이 호흡을 같이하십니다.
기다리게 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주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특별한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해서 기다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호흡을 맞추고 하나님과 사이클이 같게 되면, 때로는 하나님과 같이 한 그 자체가 좋아서 기도 제목까지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사실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복은 이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최고의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온전히 함께 하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그럴 때 절대적인 행복, 잃어버리지 않는 행복이 있습니다. 이런 경지에 이를 때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많은 사람들이 응답받지 못하는 까닭은 그가 하나님 안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그 속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호흡과 하나님 호흡이 다르기 때문이고 내 사이클과 하나님 사이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을 기다릴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제자들은 예수님 분부대로 한 자리에 다 모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님을 기다리면서 한 일은 오로지 기도였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4절)
영어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These all with one mind were continually devoting themselves to prayer’ 그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계속해서 모든 것을 쏟아 바쳐서 기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지구상에 처음으로 성령 부음을 받기 바로 전 예루살렘 교회의 제자들이 한 것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쓴 것을 잘 기억하십시오. 기독교 역사 이래에 가장 모범적인 교회, 가장 모범적인 기독교 신자들이 모여서 오로지 ‘기도만’ 했다면 오늘날 신자들 교회가 그것보다 더 잘하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도하십시오.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 기도가 여러분의 행복이 될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행복하게 될 것이고, 기도의 응답은 자연적으로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성령님을 부르십시오. 입으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성령님을 부르고 성령님 오시기를 기도하시고 기다리십시오. 그리하면 초대교회에 임했던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
[생각해 봅시다]
1. 사도행전 1장 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경 말씀을 읽으면 나에게 어떤 느낌과 생각이 드나요?
2. 세상의 가치관에 반하여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 때가 있나요? 경험을 나눠보고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오늘 에스라 강단에서 찾아봅시다.
3. 성령 충만은 단순히 감정적인 경험을 넘어 우리의 삶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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