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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이 시대의 괴물 (누가복음 4 : 1~13) 조회수 : 13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10-24

이 시대의 괴물

누가복음 4 : 1~13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가 여신 헤라의 음모를 받아서 아주 무서운 죄를 짓게 됩니다. 헤라 여신이 헤라클레스를 그렇게 음모한 까닭은 헤라클레스가 헤라여신의 남편인 최고의 신 제우스의 사생아였기 때문입니다. 헤라 여신은 어떻게 하든 헤라클레스를 없애려고 합니다. 그 음모 중 하나가 헤라클레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것, 미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헤라클레스는 이 음모로 말미암아 자기 자식을 죽이고 맙니다. 나중에 정신 차리고 보니 자기가 자기 자식을 죽였던 것입니다. 너무나 괴로웠던 그는 어떻게 하면 자기 죄를 다 씻을 수 있는지 고민 고민 하다 열두 가지 과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세상에 어느 누구도 죽일 수 없었던 히드라라고 하는 물뱀을 처치하는 일입니다.

히드라는 머리가 아홉 개인 괴물입니다. 천하에 어떤 장사도 물뱀 히드라를 죽일 수 없었던 까닭은 머리 하나를 없애는 것도 참 힘든데, 힘써서 하나를 없애고 나면 나머지 여덟 개가 달려들기 때문입니다. 그 머리 여덟 개와 싸우다 보면 없앤 머리 하나에 머리 두 개가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어떤 장사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히드라를 처치하러 출발합니다. 가서 싸우지만 머리 하나를 치고 나면 그동안 두 개가 생겨나니 감당하지 못합니다. 헤라클레스는 하다 하다 안 되니 함께 데리고 간 조카에게 자기가 히드라 머리를 없애고 다른 머리와 싸우는 동안 얼른 횃불로 처치한 머리 자리를 지져버리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머리가 다시 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렇게 되었습니다. 머리 하나를 처치하면 조카가 얼른 나서서 횃불로 지져버리니 없어진 자리에 머리가 생겨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헤라클레스는 세상의 어떤 장사도 처치할 수 없었던 무서운 괴물을 처치하고 영웅이 됩니다.

한 작가가 이 히드라 신화의 의미를 해석했습니다. ‘히드라라는 괴물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그 작가는 하나의 관문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길로 나가기 위한 관문이다. 그 문을 통과해야지만 어떤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관문이다. 그리고 히드라는 욕망이다. 하나를 자르면 두 개가 솟아오르는 머리는 욕망의 불꽃이다, 헤라클레스 라는 사람이 과연 그 위대한 길을 갈 가치가 있는, 자격이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는 사람인지 테스트하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의 길로 들어가는 관문이 있습니다. 그 관문을 넘어가야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는 교회다.’ 라고 말하면서도 그 관문을 통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그 관문을 통과하지 아니한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막 공생애를 시작하시려고 할 때 맨 처음 다가온 것이 마귀의 시험입니다. 이 시험이 바로 하나의 관문입니다.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감당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 그런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마귀가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왜 그 기록을 오늘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입니다. 내 아들 예수가 이런 시험을 무사히 잘 견디어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럴까요? 예수님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고 할지라도 당연히 이런 시험을 이기시는 분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이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이 세상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최소한 이 관문을 통과해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에게 다가온 이 실험, 이 유혹의 시점이 언제인가를 관심 있게 보아야합니다.

우리도 다 이런 일을 당하게 됩니다. 어떤 때 예수님께 가장 이 시험이 다가왔는지 보겠습니다. 그 하나는 예수님께서 40일간 금식하시고 난 뒤입니다. 금식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잘 견디고 나면 그 다음 날도 어느 정도 괜찮습니다. 사흘, 닷새, 일주일이 되면 정말로 힘듭니다. 예수님의 금식이 사십일입니다.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사십일을 금식하면 온 세상이 다 먹을 것으로 보입니다. 돌멩이도 떡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고 다른 사람이 먹는 음식 냄새만 맡아도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금식하고 있을 때면 금식 끝나고 나면 돈이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거나 조금만 먹어도 살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금식은 쉽지 않습니다. 먹는 것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욕심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의식주의 문제, 건강의 문제, 자식의 문제, 경제의 문제 등이 극도에 달할 때에 흔히 이런 시험이 우리들에게 다가옵니다. 또 꼭 금식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특별하게 어떤 사안에 대해서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긴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이런 시험이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정말로 큰 어려움이 있을 때,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이런 시험이 다가올 수 있으므로 각별히 더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막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삼십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 지내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려고 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그 기한이 한 삼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막 시작하면서 그것도 삼년밖에 되지 않는 그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무언가 보여야하고, 당신 자신을 사람들에게 알려야하고 복음을 전해야하는 중요한 사명을 지니고 계십니다. 이럴 때일수록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 합니다.

시험은 이럴 때 찾아옵니다. 무언가 사람들 눈에 내가 띄어야하고 내 이름이 띄어야하고 무언가 나를 비춰주는 조명이 필요한 때에 옵니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좀 보여주고 하고 싶겠지만 참아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에 라는 말이 없어야합니다. 기독교 그리고 교회의 가장 기본이 라는 이름, ‘를 없애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먼저 이겨야 합니다.

이제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그 길을 가시는데, 맨 처음 관문에서 도사리고 있던 괴물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것인지 성경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세 가지 시험을 보십시오.

하나는 돌로 떡을 만드는 것입니다. 마술을 부려 떡이 되면 멋지지 않습니까? 그 당시 굶는 사람이 많았는데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마 요즘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먹을 것 즉 밥을 주는 것이니 그렇게 된다면 대통령도 고민할 것 없을 것이고, 북한도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고, 과거 가끔 일본에 저자세를 보일 때가 있었는데 그런 일들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도 힘써서 일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그 다음에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계시지만 본래 하늘의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입고 오셨습니다. 마귀도 압니다.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받쳐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뛰어내리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다 챙겨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한 번만 절하면 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한 번만 절하면 되니 얼마나 쉽습니까? 셋 모두 수고가 없습니다. 힘든 것이 없습니다. 고통이 없습니다. 내 희생이 없습니다. 아주 쉽습니다. 힘들지 않고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것으로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인 돌로 떡을 만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쉽겠습니까? 수고할 필요도 없습니다. 회사 운영하느라 얼마나 힘듭니까? 돈벌이 하느라 얼마나 힘듭니까? 이렇게 되면 백수가 따로 없습니다. 전부 다 공장장이고 공장 사장입니다. 어디 가든 먹을 것이 있지 않습니까? 아마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단숨에 영웅이 되셨을 것이고 어마어마한 존경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면 어땠을 것 같습니까? 성전 마당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외부에 대해서, 새로운 선지자에 대해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그것을 보았다면 드디어 신이 왔다, 메시야가 왔다고 환호했을 것입니다. 크게 수고할 것 없고, 십자가에 갈 것도 없이 예수님은 일약 스타가 되셨을 것이고, 메시야가 되셨을 것입니다. 딱 한 번 뛰어내리기만 하면 됩니다.

천하만국의 영광을 얻는 것은 더 쉬운 일입니다. 누가 본다면 민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아무도 없는데서 한 번 절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다 얻을 수 있습니다. 한꺼번에 다 얻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지금 마귀는 예수님에게 이것을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와 우리 젊은이들 우리 어린아이들을 가장 유혹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무 수고 없이 무엇을 얻으려고 하고, 힘들이지 않고 누리려고 하고, 고생 없이 다 얻으려고 하고 고통 없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즐기려고 하는 유혹입니다. 로또를 사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합니다. 한 주 동안 흥밋거리를 가지려고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모두에게 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세상이 그런 세대입니다.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자들까지 그렇게 하는 시대입니다. 어떤 기독교신자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합니다. 예수님을 끊임없이 이용하려고 하고 예수님께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좋은 것을 요구하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나는 남보다 더 쉽게 살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좀 더 편하게 살게 해달라고,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덜 수고하고 덜 희생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세금을 덜 내게 해주시고, 우리 자식은 군대에 보내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예수님을 예수님으로가 아니라 마귀로 만들려고 하는 불신앙입니다. 비신앙이고 반기독교적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떡을 만들 수 있었고 얼마든지 뛰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절 한 번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안하셨을까요? 그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이 유혹을 단호하게 한 마디로 거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오늘 기독교 신자들에게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기독교인들은 정당하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또 당첨을 바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술적인 방법은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때 신비한 방법으로 역사하시기도 합니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것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공부도 너무 쉽게 해서는 안 됩니다. 공부도 별로 하지 않고 성적도 별로 안 좋으면서 족집게 과외 같은 힘을 빌려 좋은 대학가는 것은 결코 우리 자식들에게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평생 고생합니다.

복도 받아야할 사람이 받아야 복입니다. 이것은 정말 잘 알아야합니다. 복을 받지 못할 사람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복을 받으면 그 사람은 망합니다. 자식이 망합니다. 집안이 망하고 가정이 무너집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복받아야할 사람이 복 받는 삶을 살고 난 뒤 당연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지 성경이 말씀하는 진짜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 받을만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을 달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정당하게 살아야합니다. 정직하게 살아야합니다.

홍길동이 홍길동이 되기 위해서는 부엌대기를 먼저 잘해야합니다. 무술과는 전혀 관계없는 밥을 잘 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 합니까? 자기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선생님을 위해서 불을 잘 피워야하고 청소를 잘 해야 합니다. 이것을 잘 하다보면 어느 틈에 스승 같은 무술의 고수가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부엌대기는 안 하고 기가 막힌 무술만 배우려고 합니다. 한 순간 얼른 배워 하늘로 날아가고 장풍을 쏘아 앞 사람이 넘어지게 하려는 것 같은 일확천금을 바라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안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떡이 필요해도 수고 없이, 희생 없이 떡을 마련하려고 할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물질이 급하고 다급한 일이 있어도 영혼을 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간혹 누군가 안수해준다고 할 때 안수 받으면 좋을 것 같아 머리를 내밀고 안수 받는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고 그렇게 합니까? 잘못하면 내 영혼을 팔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함부로 내 머리를 내미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아무리 물질이 급하고 먹는 것이 급하고, 아무리 내게 급박한 일이 있어도 영혼을 파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영혼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교회의 영혼을 파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을 파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하나는 아무리 인기와 존경이 갈급해도 사람들이 보라고 쇼를 할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 보라고 쇼하지 마십시오. 교회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위해서, 세상에 보이기 위해서 쇼해서는 안 됩니다. 한 분은 예배는 쇼가 아니다.’ 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말씀하시는 것은, 인간이란 누구든지 소원을 가질 수 는 있다, 그러나 너무 간절해할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 소원이 마땅하게 이루어져야할 것인 소원인 것 같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너무나 좋을 것 같이 보여도 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좋게 생각되어도 나중에 아닐 수 있고, 겉으로는 그럴 것 같아도 속으로는 아닐 수가 많습니다.

우리 인간을 가장 괴롭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가장 괴롭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여러분이 제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든지 물건이든지 무엇이든지 여러분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여러분이 가장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것만큼은 꼭 있어야 하고, 이것은 이렇게 되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을 정말로 괴롭힙니다. 그러므로 뭐든 너무 간절히 바랄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이라고 말할 것이 아닙니다. 안 그래도 삽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내가 괴롭고 망할 수 있습니다.

소원을 가지십시오. 하나님도 여러분이 소원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소원을 위해서 노력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발전합니다. 그러나 너무 간절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나름의 최선의 노력을 하고 난 뒤 얼른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자유를 얻는 사람은 내가 할 노릇을 다 하고 난 뒤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려놓는 그 사람입니다. 자유뿐만 아닙니다. 행복도 얻습니다.

나름대로 노력하십시오. 노력까지 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적당하게 하십시오. 너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두 번째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세 번째는 여러분들에게 주의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제일 잘하는 것, 여러분이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진 것, 다른 사람에게 없는 것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 이것에 대해서 각별하게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돌로 떡 만드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예수님에게 너무 쉽습니다. 딱 한 번 절하는 것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쉬운 일입니다. 이런 것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재산에 대해서, 혹시 여러분들에게 권력이 있으면 권력, 특별한 재능이 있으면 재능, 여러분들이 어떤 지위에 있으면 그 지위를 조심하십시오. 그것들은 참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선물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물이 될 수 있고 또 여러분에게 좋은 것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탄이 여러분들에게 가장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재능, 재산, 여러분들이 제일 잘하는 것,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그것, 사탄은 그것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을 피할 것은 아닙니다. 비겁하게 넘어갈 것 아닙니다. 당당히 그리고 예수님처럼 멋지게 통과하십시오. 그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이 세상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맞이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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