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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걸기대(乞企待) / (룻기 2:1-13) 조회수 : 8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10-24

걸기대(乞企待)

룻기 2:1-13

살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떠나서 모압으로 갔던 나오미, 그러나 남편과 두 아들은 다 잃어버리고 오히려 죽은 모습이 되어서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며느리 룻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10여년만입니다. 지금까지 나오미에게는 하나님이 없는 모압 땅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현실적인 문제가 당장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것이 되는 때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것이 되려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합니다.

먹을 것이 없으므로 먹을 것을 구해야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마침 나오미가 이스라엘에 도착한 때가 추수 때였습니다. 더욱이 감사한 것은 이삭줍기는 품위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줍기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 허락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우연하게도 룻이 이삭줍기 나간 곳이 시댁의 친족 보아스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연하게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연하게도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을 다시 확인시켜주시는 말씀이 4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라는 말씀입니다. 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보아스가 어떻게 추수하고 있는지 밭에 한 번 나가보아야하겠다고 생각하고 나갔더니 마침 그때 룻이 이삭줍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인생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필연밖에 없고 하나님의 섭리밖에 없습니다. 성경의 모든 곳에서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혹시 현재 삶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할지라도, 어떤 사람이 힘들게 하고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고통스럽기도 하고 서러움을 당하기도 하고 정말로 가슴 아픈 일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는 것을 얼른 아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우연은 없습니다.

밭에 도착한 보아스가 일꾼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보아스가 나눈 인사에 눈길이 갑니다. 보아스가 일꾼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하니 일꾼들은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일꾼들은 보아스로 말미암아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 주인의 위치에 서면 일꾼들을 함부로 대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꾼들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보아스의 인격입니다.

복 받는 사람은 항상 복 받을 사람의 모습을 가집니다. 우리는 얼른 생각하기에 그런 사람들이 어쩌다가 이런저런 복을 받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받을만한 이유가 틀림없이 있습니다. 무언가 있습니다.

룻도 그러했습니다. 보아스가 사환에게 이는 누구의 소녀냐’(5)‘ 하고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룻의 모습은 무언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자태도 다르고 표정도 다르고 행동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자태, 행동 다 표시가 납니다. 이삭줍기를 허락한 하인들도 말합니다,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이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7)’ 룻에게 그것이 있었습니다. 속에 있는 인품 인격이 밖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나중에 보아스가 룻에게 말합니다,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11) 이것으로 보아 보아스는 이미 룻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룻을 직접 만나보니 과연 소문이 지나친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대로 다 드러납니다.

룻은 고향땅 모압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젊은이를 만나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늙은 시어머니를 홀로 보낼 수 없었습니다. 가진 것 하나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는데 나라도 시어머니 곁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어머니를 선택했습니다. 모압의 신과 이스라엘의 신 가운데 룻은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선택은 희생이 없이는, 헌신이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자기 포기가 없으면 되지 않습니다. 생명을 각오한 결단 없이는 이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룻의 선택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최고의 계명이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 룻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시어어니를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룻에게 어떤 사랑을 주실지 궁금했는데 우선 보아스의 각별한 사랑,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더 예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룻에게 주시는 상이 이것으로 그치겠는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서 룻이 시어머니에게 그날 일을 말하면서 그 은혜를 베푼 사람이 보아스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보아스를 축복하고 치하합니다. 그때 나오미의 그 말을 보면 보아스가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20)

여기서 죽은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죽은 나오미 남편을 말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아스는 과거에 자기 남편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보아스를 과거에도 은혜를 베푼 사람이고 지금도 은혜를 베푼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는 죽은 자가 남편이 죽은 나오미의 집을 가리킨다면 살아있는 자는 나오미 집 이외 다른 가난한 사람 집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보아스는 나오미의 집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늘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보아스는 과거에도 은혜를 베풀고 지금도 은혜를 베푸는 사람, 불쌍한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궁금증을 가집니다,‘이런 보아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을 내리실까?’

출애굽기 3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을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33:19) 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갈라디아서에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6:6)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은혜 받을 자에게 반드시 은혜를 베푸십니다. 은혜 받을만한 사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은혜를 주십니다. 이런 사람으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께 간구의 기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나로 하여금 예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행복하시게 되는 내가 되게 해주십시오.’ 라는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 꼭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 되기만 하면 복을 주고 싶어서 안달하신 분이시고 복을 주시지 못해서 병이 나신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그런 삶을 사는 여러분들에게 복을 아끼겠습니까? 절대로 아끼시지 않습니다.

이때 나오미에게 번뜩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혹시 저 보아스가 우리 집의 기업을 무를까..’ 생각합니다. 기업 무를 자는 히브리말로 고엘혹은 가알이라는 말로 특별한 친족을 의미합니다. 특별한 친족이란 가문의 손실을 예방하고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의무 중에는 아주 특별한 의무도 있습니다. 가문의 사람이 후손 없이 죽었을 때 그 미망인과 결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를 이어주기 위한 것인데 이것을 계대결혼이라고 합니다. 이 계대결혼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계대결혼이 특별한 것은 기업 무를 자가 그 땅을 사도 그 땅은 자기 땅이 안 되고 미망인의 본래 남편 집안의 땅이 됩니다. 혹시 자식을 낳아도 그 자식은 자기 자식이 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자식이 됩니다.

이것을 아는 나오미는 지금까지 들은 보아스, 며느리 룻을 통해서 들은 보아스 정도 된다면 어쩌면 율법 본래의 가르침에 따라서 계대결혼을 수락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22절에서 나오미가 룻에게 말합니다,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무언가를 생각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좀 지나친 기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상당히 부담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신자들의 약간 지나치고 약간 과한 걸기대도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시기도 합니다. 그럴만한 사람에게 이런 걸기대를 응답해주기도 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끔씩은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 신자들의 걸기대, 놀라운 꿈도 들어주십니다. 다만 그냥 어쩌다가 소위 운이 좋은사람들에게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럴만한 사람들의 걸기대를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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