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에스라강단
  제  목 : 하나님의 아이러니 (출애굽기 7:1~6) 조회수 : 6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10-24

하나님의 아이러니

출애굽기 7:1~6

한 역사가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과거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 중 하나가 역사입니다. 이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 다른 사람들이 했던 실패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 민족들은 이집트에서 430년 간 종살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보고 계셨다가 이제는 구원해야겠다고 판단하시고 준비해두신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집트 왕 바로에게 내 백성을 돌려보내라는 말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나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이므로 그것 때문에 바로가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참 희한한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왜 완악하게 만드시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집트 왕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지 않는 것을 겉으로 보면 이집트 왕의 마음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두 번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여러 번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4:21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 왜 그러시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합니다. ‘이집트 백성들이 그렇게 고통을 당하게 되면 이집트 백성들만 그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들도 함께 당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집트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집트 사람들이 먼저 고통을 당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이스라엘도 고통을 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존재들은 이래야만 겨우 하나님을 아는 민족이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수차례 많은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기억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 같지만 너무 몰랐습니다. 순종하는 것 같은데 자신들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순종하고 좋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제자리에 돌아오라고 수없이 말씀하시지만 이스라엘은 제자리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은혜도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인지 모릅니다.

열 가지 재앙으로 치신 후에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을 합니다. 나올 때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은금패물을 얻어서 나오게 하셨을 때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홍해에 막히자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셔서 광야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물을 해결해주자 이번에는 고기가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심지어는 마늘을 먹지 못해서 힘을 못 쓰겠다고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은혜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민족들의 절정은 가나안 정탐 때의 일입니다. 열 두 사람 정탐꾼들을 보냈는데 그 중 열 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두 사람은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부정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수많은 고생을 하고 그렇게 위대한 영도력을 보였던 모세를 바꾸고 이제는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데까지 갔습니다. 그들에게 또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너무 화가 나신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말고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고 죽게 될 것이라는 징벌을 선언하셨습니다.

그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잘못 했습니다. 이제라도 가나안에 들어가겠습니다. 진격하겠습니다.’ 라고 나섭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단 결정하셨으면 이제라도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애초에 결정하셨을 때 순종해야지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면 그 결정을 따라야 합니다. 모세도 하지 말라, 들어가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하셨으니 들어가면 안 된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거역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어이 가나안으로 올라갔다가 패배를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하라고 하시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할 말이 많고 경험이 많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견을 낸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들어야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겸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라고 할 때는 하지 않고 하지 말라고 할 때는 기어이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만하면 겸손하게 라고 순종하고 있는가? 내 생각과 내 의견이 맞을 때만 순종하고 다를 때는 순종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합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불순종의 태도, 불신앙의 태도는 이스라엘 나라 역사 마지막까지 계속 됩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을 이스라엘에게 보내셔서 순종하라, 돌아오라, 제발 하나님을 제대로 좀 알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할 무렵, 하나님은 당신의 종 예레미야를 통해서 지금이라도 바벨론에 항복하라 그것이 고생을 덜 하는 길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불순종했습니다. 바벨론에 항복하지 아니하고 이집트로 피난을 갑니다. 바벨론은 이집트까지 따라가서 다 잡아갔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두 눈알이 빠졌고 이집트에서 바벨론까지 그 먼 길을 짐승 끌려가듯이 끌려갔습니다. 이렇게 혹독한 고생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망한 뒤에야 후회를 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연구하고 율법을 연구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한다는 성경연구, 율법 연구가 차츰 하나님이 없는 성경 연, 율법연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또 하나님을 외면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고 율법을 공부하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낙심하셨습니.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시고, 아들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아들마저 십자가에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을 유대전쟁이라고 합니다. 그 유대전쟁 때 유대민족들은 참으로 처참하고 비참하게 멸망을 당합니다.

세상이 참 어렵습니다. 국가적으로, 국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렵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가정들에게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함께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통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이러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그대로 두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고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십니다.

세상이 힘들고 어렵고 행복하지 못하고 평화롭지 못하는 것, 북한과의 문제가 풀릴 듯하다 되지 않는 까닭은 기독교가 제 자리에 제대로 서지 않아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올 때까지, 제자리에 설 때까지, 순종할 때까지 세상을 치시기 때문에 세상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것을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8:19-22)’

세상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독교가, 기독교 신자들이 제자리에 돌아가는 것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기독교인들, 기독교가 이것만 제대로 하게 되면 먼저 기독교인들이 행복하게 되고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이것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정말로 세상의 주인이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도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더 치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십시오. 하나님께 진정으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하십시오. 우리가 진정으로 제자리에 돌아오게 되면 우리가 먼저 행복하게 되고 우리가 먼저 평화를 누리고 세상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

  이전글 : 냉수 한 그릇이라도..(마태복음 10:42)
  다음글 : 붙어있어야 (요한복음 15:1~7 )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