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에스라강단
  제  목 : 최고의 교육 (사무엘상 2:26) 조회수 : 11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5-07

최고의 교육

사무엘상 2:26═══════════════════════

한적한 시골 마을에 아담하고 아주 멋진 호텔이 있었습니다. 요리는 환상적이고 웨이터들의 시중은 최상급이었습니다. 이 호텔에 부유한 티가 뚝뚝 떨어지는 고귀한 부인 한 사람이 투숙했습니다. 아주 세련되고 우아한 부인이었습니다. 종업원들은 서로 다투어 이 부인의 시중을 들려고 애를 씁니다. 며칠 뒤 이 호텔에 고품격의 멋진 신사 한 사람이 우연하게 투숙하게 됩니다. 누가 보든지 이 두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집 사람들같이 보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최고의 시간을 보낸 후에 호텔을 떠나게 됩니다.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두 사람은 포도주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습니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부인은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더듬더듬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저는 백화점 스타킹 판매원입니다. 이 휴가를 위해 저는 1년 동안 준비했습니다. 이 드레스는 할부로 구입한 것입니다. 일주일에 1달러씩 갚아야합니다.” 이 말을 들은 신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할부가게의 수금원입니다. 저 역시 1년 동안 번 돈을 거의 다 저축하여 이 휴가를 오게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아주 멋있는 인생들입니다. 인생을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두고 목표를 두고 그 목표를 향하여 모든 것을 다하여 매진해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한 지방 도시에 엘가나라는 레위지파 사람이 있었습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은 종교적인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엘가나에게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나라는 아내와 브닌나라는 이름을 가진 아내가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을 낳았지만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자식이야 낳을 수도 있고 낳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브닌나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한나를 조롱하고 괴롭힌 것입니다. 특히 제사 드리러 갈 때가 되면 더했습니다.

한나는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아들을 주기만 하면 하나님께 바치겠노라고 서원을 했습니다. 그러자 한나가 임신을 했습니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사무엘입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자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 그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성소에 데리고 가서 거기다 두고 돌아오게 됩니다. 사무엘은 성소에서 제사장의 지도를 받으면서 자라났습니다. 이 사무엘이 자라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됩니다. 오늘 본문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라는 말씀은 사무엘이 어릴 적 성소에서 자랄 때 모습을 묘사한 말인데 마치 예수님의 어릴 때 모습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주제를 하나 보여주십니다. ‘기독교인들은 우리의 자식들이나 손주들에게 가장 소원해야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은총이라는 말을 먼저 보겠습니다. ‘은총이란 사랑을 받는데 그 중에서 큰 사랑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또 귀히 여김을 받는데 대단히 귀히 여김을 받는 것을 은총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람들 가운데 보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보고 또 보아도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고 또 만나도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지 못하면 너무나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보고 또 보아도 만나고 싶고 만나도 또 만나도 좋은 사람, 만나면 한없이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또 만나고 싶습니다.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무언가 받은 것이 없어도 희한하게 그 사람이 나에게 상당히 많은 것을 준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저 사람으로부터 실제적으로 받은 것은 하나도 없는데 대단히 많은 것을 받은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내 모든 것을,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주고 또 주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 은총이라는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사무엘이 그런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또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 빠뜨리지 말아야할 것은 더욱이라는 말입니다. 잠시 동안만 좋은 사람이고 귀한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릴 때는 그랬지만 자라면서 좋은 것이 없어지는 사람이 있고 몇 번 더 만나다 보면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것을 말씀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사랑스럽고 여전히 귀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더 사랑스러워져 가고 더 귀히 여김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그랬습니다.

사무엘의 부모들은 사무엘을 어떻게 그런 사람으로 키울 수 있었겠는가를 보겠습니다.

먼저는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사무엘의 가정은 예배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 가정은 예배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엘가나의 가정은 두 아내 때문에 시끄러웠습니다. 특히 예배드리러 갈 때는 더욱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엘가나 마음은 참 불편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예배드리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인 엘가나는 결코 제사 드리러 가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까닭이 있어도 예배를 빠지지 않고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 정하신 곳에서 여러분들을 보기 원하십니다. 엘가나의 가정이 그렇게 복 받은 가정이 된 첫 번의 것은 예배를 귀하게 여긴 까닭입니다.

두 번째는 사무엘의 가정은 사무엘의 출생, 자식의 출생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알았습니다.

한나가 아이를 낳고 난 후 제사장을 만나서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삼상1:26-27)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식을 낳았다는 말입니다. 한나의 기도에 그것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신앙에 따라서 한나와 엘가나는 사무엘을 완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했습니다. 한나는 그것을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고백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하나하나 실행에 옮겼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분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마음속으로 생각까지는 합니다. 고백까지도 합니다. 때로는 결단과 결심도 합니다. 문제는 실천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천적인 신앙이 없는 것, 이것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권세를 누리지 못하고 능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들은 어떻게 했나요? 먼저 하나님과 약속을 하였습니다. 서원이라는 말로 나타납니다. 그냥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맹세하였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그냥 쉽게 바치노라고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칼을 머리에 대지 않겠다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또 혼자서 결심하고 결단한 것이 아니라 남편과 그 일을 의논하고 합의했습니다, 완전히 두 사람이 함께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만 두 사람이 의논하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에게 구체적으로 약속했습니다.

먼저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아이를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바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음은 젖을 떼면 바치겠다는 시기를 정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너무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오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삼상1:21-22) 한나는 왜 올라가지 아니하였을까요? 한나는 중요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겠노라 했는데 혹시라도 이 아이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어떻게 섬겨야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성소에 갔다가 그것이 습관이 되고 품성이 되어 평생 하나님을 잘못 섬기고 성전을 잘못 섬기게 되면 어떻게 할지 염려하여 교육을 시키고 난 후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한나와 엘가나는 사무엘을 이런 아이로 교육시켰고 그 결과 위대한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사무엘을 그렇게 가르쳤더니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의 어른,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세워주셨습니다. 또 사무엘의 부모들에게 주신 것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삼상2:21) 자식을 더 많이 낳은 복을 받았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복을 그 가정에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보잘 것 없는 가정, 그것도 두 아내로 말미암아 시끄럽기만 하던 집안을 이스라엘에서 가장 복 받은 집안으로 우뚝 세워주셨습니다. 이런 교육, 이런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

  이전글 : 언제나 노래할 수 있는 사람들 (사무엘하 6:1-15)
  다음글 : 어머니 (요한복음 19:25-27)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