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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초대 안디옥 교회 (사도행전 13:1-3) 조회수 : 42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3-24

초대 안디옥 교회

사도행전 13:1~3

교회에 대해서 실망을 한 한 청년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가는 교회마다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완전한 교회를 하나 소개시켜주십시오그 말을 들은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알았네. 찾아보겠네. 자네도 찾아보게. 찾으면 나에게도 말해주게. 나도 그 교회에 나가려고 하네. 그리고 자네는 그 교회에 나가지 말게. 왜냐하면 자네가 그 교회에 나가면 그 시간으로부터 그 교회는 자네로 말미암아 교회의 완전함이 깨어지고 말테니까 말일세.’

기독교 교회 역사 2,000년 동안 끊임없이 외치는 소리가 있습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이 소리는 세월이 지나갈수록 점점 더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초대교회가 기독교 교회의 최고 모델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또 그만큼 오늘날의 교회가 교회 본래의 모습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본문은 초대교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초대 안디옥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기독교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집사로 일하던 스데반이 순교를 당합니다. 스데반의 순교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기독교 교회에 대한 박해로 이어집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흩어진 그 교인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중에 몇 명이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 소문을 예루살렘 교회가 듣게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바나바를 안디옥에 목회자로 파송하였습니다. 바나바의 사역으로 안디옥 교회는 교인수가 많이 늘어나게 됩니다. 교인수가 많이 늘어나자 바나바는 자기 혼자서는 교회를 감당하지 못하겠으니 지도자가 더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적합할까 생각하던 차에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이전에 교회를 박해하다 이제는 개종해서 기독교인이 된 사울이라는 사람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분을 모시고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목회를 하였습니다. 이 두 분이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목회를 했더니 오늘날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인 크리스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안디옥 교회 교인들이 듣게 됩니다.

이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이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는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보내라는 계시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 계시에 순종해서 두 분을 선교사로 파송하게 됩니다. 이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란 어떤 곳인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를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교회는 특정인 몇 사람이 계속해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교회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나가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부터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사도들이 모여서 모든 일들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교인 숫자가 늘어나니 일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사도들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이러다가는 본연의 일인 기도와 말씀에 소홀하게 되겠다, 다른 일들은 교인들에게 맡겨야하겠다고 판단하고 집사들을 세웁니다. 이 집사들로 하여금 말씀과 기도 외의 다른 일들을 담당하게 하고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 바나바도 그러했습니다. 교인 숫자가 많이 늘어나자 혼자서 하려고 하지 않고 함께 해야 할 사람이 필요 하다고 생각하고 사울을 모시고 와서 함께 목회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 이외에 또 다른 목회자가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라는 1절 말씀에서 여러 사람들의 목회자가 함께 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동안은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를 주도했습니다. 교회 중심을 이 두 사람이 담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안디옥 교회는 두 분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기둥 같으신 분이고 중심되신 분이고 처음부터 이 교회를 위해서 일해오신 이런 분들이 계속해서 하는 것이 교회에도 좋고 우리에게도 좋고 하나님께도 좋겠다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그 두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런 교회여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독교 교회의 첫 시작을 보인 사도행전 1장에서는 베드로가 교회를 주도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사도행전 2, 3, 4장 쭉 나가면서 조금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혼자 교회의 전방에서 일하던 베드로가 조금씩 뒤로 물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사도행전 15장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야고보 선생이 교회를 주도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교회의 주인은, 교회의 최종 결정권자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아무리 사람이 많고 아무리 유능한 지도자가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교회 일의 최종 결정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이 정말로 잘 알아야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초대교회들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이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은 늘 기도했습니다. 힘써서 기도했습니다. 금식하면서까지 기도했습니다. 특별한 사안이 있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굶어가면서 기도하면서까지 교회 일을 하나님께서 결정하십시오. 인도해주십시오.’ 라고 요청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2)’ 사안이 있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먼저 금식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선교사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보낼 때 또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냥 보내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또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보내라는 하나님 뜻을 알자마자 즉각적으로 순종합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순종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기둥이고 중심이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교회를 키운 것도, 교회를 교회되게 한 것도 이 두 분입니다. 이 두 분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습니다. 건물 기둥으로 예를 든다면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기둥이 없으면 건물은 제대로 지탱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두 기둥을 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보아도 아닐 것 같지만 그들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 교회의 주인, 이 교회를 더 생각하시는 분은 우리보다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안디옥 교회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잘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것이고 설사 교회가 무너지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이 다 이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이 순종을 선택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기독교인들의 순종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했듯이, 안디옥 교회가 했듯이, 아브라함이 했듯이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우리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고 가장 잘해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가 이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도 나라도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탓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좋은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모델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이 그렇고, 교회는 오히려 그런 세상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것을 잘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잘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주인이 따로 계시고, 교회는 이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서고 일이 어떻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교회들은 다 믿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잠언서 16장은 33절은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큰소리 치고 잘난 척 하고 떠들어도, 하나님은, ‘결국은 내가 결정한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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