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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제사보다 나은 것 (마태복음 25:14-30) 조회수 : 28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3-24

제사보다 나은 것

마태복음 25:14~30 

본문은 모두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세 사람의 종이 나옵니다. 주인으로부터 다섯 달란트 받은 종, 두 달란트 받은 종 그리고 한 달란트 받은 종입니다. 이 세 사람의 종을 둘로 나누어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먼저 한 달란트 받은 종입니다. 어떻게 보면 다른 두 종보다 지혜롭습니다. 장사를 잘 해서 남겨보아야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장사를 잘 하고 열심히 해서 많이 남겨도 그 모든 것을 주인에게 다 바쳐야합니다. 공산주의의 공동 농장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해봐야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나는 것은 공산주의 국가도 자기 집 앞의 텃밭은 개인용도로 줍니다. 농사를 지어서 자기가 다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데 공동농장은 농사가 안 되는데 개인에게 주는 텃밭은 그렇게 농사가 잘 됩니다. 열심히 짓게 되면 다 내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이런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남의 돈을 받아 장사를 하는데 혹시 잘못 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주인에게 얼마나 야단을 맞을지 겁이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주인은 엄청난 부자입니다. 달란트의 단위는 오늘날 돈으로 따진다면 수십억이 되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주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돈들 중에서 일부를 떼어서 종들에게 맡겼을 것이므로 주인에게는 그렇게 주고도 돈이 상당히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종은, 우리 주인은 엄청난 부자인데 내가 장사를 해서 벌면 얼마나 벌겠으며 그렇게 벌어 주인에게 드려보아야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땅에 묻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기 스스로 똑똑한 사람이라고 자부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24절은 이것을 말합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나는, 당신이 어떤 말을 할 것이며 어떻게 할 것인지 전부 다 다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19)..

이제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이때까지 다른 두 종들은 그동안 장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겠습니까? 그런데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에 묻어두었으니 편하게 잘 놀았습니다. 아주 지혜롭고 아주 똑똑하고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실패했습니다. 그는 주인의 뜻을 몰랐습니다. 주인의 뜻은 장사를 해서 남기라는 뜻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남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일단 장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자기가 주인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동안 편하게 잘 놀았습니다. 이 종에게는 불순종이라는 큰 잘못이 있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라고 했던 사무엘의 말은 기독교의 명언 중의 명언입니다. 여러분도 잘 기억하십시오. 순종이 그 어떤 것보다 낫습니다.

이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두 종을 생각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이들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보다 덜 지혜롭습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인지 모르겠지만 그 세월동안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놀고 즐기고 있는 동안 그 두 종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들은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생각했던 것을 아예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죽으라고 벌어보아야 자기네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고 혹시 얼마 벌었다고 할지라도 그까짓 돈이야 우리 주인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혹 잘못 되면 야단맞는 것 정도가 아니라 쫓겨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예 못했을 수가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보다 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과를 너무나 잘 압니다. 이들은 주인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귀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 종들이 귀한 것은 주인이 시킨 일이라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아니하고, 따지거나 계산하지 아니하고 순종하겠다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귀한 것입니다.

이제 세 종들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받게 되는지 살펴봅니다.

먼저는 한 달란트 받은 종입니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무서운 책망과 혹독한 벌입니다. 주인은 그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네가 알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아주 조금 아는 것을 전부 다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다 내 주인을 담으려 하고 하나님을 담으려 하니 그것이 얼마나 큰 교만입니까? 결론은 모두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28)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30)

이것이 스스로 똑똑한 사람의 결과입니다.

그 종은 겉으로는 똑똑한 것같이 보였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고 어쩌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그렇게 인정해주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은 똑똑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아무리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아무리 많은 사람이 그를 지혜롭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조금도 착오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보십니다. 하나님 눈에는 이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가 똑똑하다고 착각했을 뿐이고 다른 사람도 그 사람에 대해서 잘못 알았을 뿐입니다.

이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이 두 종은 받은 돈도 번 돈도 다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죽도록 수고하고 자기네들에게는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먼저는 이 두 종은 주인으로부터 흡족한 칭찬을 받습니다. 주인이 참 기뻐합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인의 칭찬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일하다 이런 칭찬받는 것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행복인지 아십니까? 돈 더 받고, 상 더 받고, 물질 더 받는 것이 행복인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이란 그렇지 못합니다. 내가 모시고 있는 주인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는 것은 큰 행복의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칭찬하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뻐하신다면 그것이 곧 여러분들의 복이 되고 여러분의 힘이 된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십시오.

두 번째는 주인이 참 기뻐합니다.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주인의 즐거움과 기쁨은 주인 혼자의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그것은 곧 그 두 종의 즐거움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주인은, 자네들도 나의 이 즐거움에 함께하자고 말했습니다. 우선 주인이 가진 재산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것을 종도 함께 같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주인과 종이 없습니다. 주인 반열에 종들이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영광입니까? 인생 살려고 하면 이렇게 살아야합니다. 스스로 잘나고 똑똑하고 지혜로운 것으로 생각하고 재주부리고 꾀부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보스럽고 좀 못나 보이고 미련스럽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이런 복을 받습니다.

또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이 주인으로부터 받은 상은 그 즐거움에 동참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아니하고 가장 현실적인 것까지 상으로 받게 됩니다. 처음 주인으로부터 다섯 달란트 받은 것, 자기가 열심히 해서 벌은 다섯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으로부터 빼앗은 것 전부 다 자기 것이 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인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느냐, 힘쓰느냐? 재주를 부리느냐? 무식하게 충성하는가? 이 모든 것들은 다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내가 재주 부리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누리고 잘 사는 것 같지만 잠시입니다. 잠시는 그런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30) 그동안 누렸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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